토론:동음사
2020 국문
초고
동음사(洞陰祠)는 안산 김씨 문중에서 학덕이 높은 자신들의 선조 김성대(金聲大, 1622~1695)를 추모하기 위해 1833년(순조 33)에 처음 건립한 사당이다. 김성대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모를 모시고 산골 깊숙이 들어가 살며 극진히 효도한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사후에 대사헌 관직을 받았다.
뒤에 그의 두 아우인 김성발(金聲發)과 김성옥(金聲玉), 그리고 이항로의 문인으로 명망이 높은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이 사당에 추가로 배향되어, 지금은 모두 네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중해일(中亥日)에 지낸다.
1907년에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일부가 불에 탔고, 그것을 1914년에 보수하였다. 그러나 1952년 한국전쟁 때에 건물 모두가 불에 탔고, 지금의 사당은 1962년부터 1988년 사이에 다시 세운 것이다. 사당 내에는 김성대와 김평묵의 초상화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수정
안산 김씨 문중에서 학덕이 높은 자신들의 선조 김성대(金聲大, 1622~1695)를 추모하기 위해 순조 33년(1833)에 처음 건립한 사당이다.
김성대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모를 모시고 산골 깊숙이 들어가 살면서 극진히 효도한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사후에 대사헌 관직을 받았다.
뒤에 그의 두 아우 김성발(金聲發)과 김성옥(金聲玉), 그리고 이항로의 문인으로 명망이 높은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이 추가로 배향되어, 지금은 모두 네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제사는 매년 음력 3월에 지낸다.
1907년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일부가 불탔고, 그것을 1914년에 보수하였다. 그러나 1952년 한국전쟁 때 건물 모두가 불에 탔다. 지금의 사당은 1962년부터 1988년 사이에 다시 세운 것이다. 사당 내에는 김성대와 김평묵의 초상화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