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한민국 최초 운용 전투기(F-51D 무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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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F-51D 무스탕 전투기는 대한민국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해 최초로 운용한 전투기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월 2일 미군으로부터 10대를 인수하여 다음날인 7월 3일 첫 출격을 개시하였고. 전쟁기간 중 미군으로부터 총 133대를 인수받아 약 8,500여 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1월 15일에는 UN공군 전투기들이 수백 회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적 후방 보급로의 요충지인 평양 승호리 철교를 차단하여 우리 공군의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비행기에 쓰여져 있는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는 한국전쟁 당시 조종 교관이자 참전용사였던 미 공군 딘 헤스(Dean E. Hess) 대령의 좌우명 ‘By faith, I fly(신념으로 하늘을 난다)'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는 공군의 군가나 기념물 속에 활용되어 오늘날까지도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

1차 수정

F-51D 무스탕 전투기는 대한민국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해 최초로 운용한 전투기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월 2일 미군으로부터 10대를 인수하여 다음날인 7월 3일 첫 출격을 개시하였다. 전쟁기간 중에는 미군으로부터 총 133대를 인수하여 약 8,500여 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1월 15일에는 적 후방 보급로의 요충지인 평양 승호리 철교를 차단하였다. 이는 UN공군 전투기들이 수백 회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임무로, 우리 공군의 탁월한 능력을 과시한 성과였다.

비행기에 쓰여 있는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는 한국전쟁 당시 조종 교관이자 참전용사였던 미 공군 딘 헤스(Dean E. Hess) 대령의 좌우명 ‘신념으로 하늘을 난다(By faith, I fly)’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는 공군의 군가나 기념물 속에 활용되어 오늘날까지도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F-51D 무스탕 전투기”는 세계 2차대전부터 활약한 노스아메리칸사의 전투기 모델명으로, 위와 같이 정의하는 것은 “F-51D 무스탕 전투기의 최초 운용국이 우리나라”로 잘못 읽힐 소지가 있음.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기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하여 운용한 F-51D 무스탕 전투기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문안임.
    • “첫 출격을 개시하였다” -> “첫” 삭제. 개시에 처음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음.
    • “전쟁기간 중에는” -> 전쟁 기간 동안
    • “약 8,500 여 회의” -> “약 8,500회” 정확히는 8,457회인데 8,500 여회는 8,500회 이상을 뜻함
    •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 제 6146부대 부대장이자 우리 공군의 조종교관이었던 딘 헤스 중령은 자신의 전용 F-51D에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를 새겼는데, 이는 그의 좌우명 ‘신념으로 하늘을 난다(By faith, I fly)’를 번역한 것이다.

2차 수정

대한민국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해 최초로 운용한 전투기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월 2일 미군으로부터 10대를 인수하여 다음날인 7월 3일 출격을 개시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군으로부터 총 133대를 인수하여 약 8,500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1월 15일에는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길목에 있던 승호리철교를 폭파하여 공산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승호리철교는 평양 동쪽을 흐르는 대동강의 지류에 놓여 있던 다리로, UN군이 수백 회 출격하고도 폭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 제6146부대 부대장이자 우리 공군의 조종교관이었던 딘 헤스(Dean E. Hess) 중령은 자신의 전용 F-51D에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를 새겼는데, 이는 그의 좌우명 ‘신념으로 하늘을 난다(By faith, I fly)’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는 공군의 군가나 기념물 속에 활용되어 오늘날까지도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