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천 봉곡사 대웅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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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봉곡사의 중심전각인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이 삼존불상은 중앙의 석가여래과 좌우의 협시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현종 11년(1670)에 승려 조각가인 삼응(三應) 등이 제작한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 본존불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확인되었다.

가운데에 앉아있는 석가여래상은 오른손은 손을 편 채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무릎 위에 올렸다. 이러한 손 모양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둘 다 보관을 쓰고 있으며, 전체적인 모습이 매우 비슷하지만 손의 방향은 반대로 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불석(拂石)으로 형태를 만든 후 위에 금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나무로 제작하는 불상이 많았던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불상들은 나무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 본존불 복장유물 발견 시점 검색되지 않음.
  • 민백에는 좌우 협시보살이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라고 설명되어 있으나, 지자체 제공 참고자료 등에는 존상에 대한 언급이 없고, 조선 후기의 삼존상 구성에서 주존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는 아미타불-약사불인 경우도 있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임. /
  • 불상 제작에 참여한 조각승 삼응은 경상도지역에서 활동하며 불석제 불상을 조형한 승일(勝日)을 잇는 계파의 중요한 조각승으로, 이 불상은 삼응이 수조각승이 되어 제작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승일파 조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 대웅전은 1990년에 중건되었다. / 봉곡사는 신라 때의 고승 자장(慈藏, 590~658)이 창건하고 이후 통일신라의 고승 도선(道詵, 827~898)이 고려 초 지금의 자리에 개창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불에 타 사라진 이후, 여러 차례의 소실과 중건이 반복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 5채의 전각이 있다.

1차 수정

봉곡사의 중심전각인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석가여래삼존상은 본존*인 석가여래과 두 협시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삼존상의 제작 내력에 대해 기록한 『불상조성도금사적기(佛像造成塗金事蹟記)』가 석가여래상 내부에서 발견되어, 삼존상과 함께 2008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적기에 따르면 이 삼존상은 조선 현종 11년(1670)에 승려 조각가인 삼응(三應) 등이 만들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나는 희고 무른 재질의 불석으로 형태를 만든 후 위에 금을 덧입혔는데, 17세기 후반의 불상들이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가운데에 앉아있는 석가여래상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었다. 이러한 손 모양은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양옆의 두 보살은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와 자세가 매우 비슷하며 손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다.

  • 본존(本尊): 중심 부처.
  • 협시보살(脇侍菩薩): 본존을 양옆에서 모시는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