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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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김제 청룡사 관음보살 좌상은 완주군 봉서사 향로전에 봉안했던 관음보살상이다.

특히 1655년에 봉안한 제작시기와 당시 대표적 조각승인 조능이 제작한 점, 그리고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남기고 있어 17세기 중엽경 불상연구에 기준이 된다.

불상의 양식도 조선후기의 대중적인 미의식을 담아 비록 상은 소형이지만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조능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작품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2014년 9월 1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지정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청룡사는 고려시대 승려 혜덕왕사가 1079년 금산사를 중창할 당시 세운 40여개의 암자 중 하나로, 용장사로 불렸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던 절터에 1954년 용봉스님이 토굴을 만들어 다시 수도처로 삼았다. 1963년 월정스님이 가람을 정비하면서 용천암이라 이름 붙였다가 1983년에 청룡사로 개명하였다.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하는 자비로운 보살이다. 본래 완주 봉서사 향로전에 모셔져 있었던 관음보살상은 1655년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며 조성되었으며,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조능 외에 6명의 조각승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나무로 만든 후 금을 덧입힌 불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관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이며, 귀걸이나 목걸이 등 다른 장엄은 하지 않았다. 양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45㎝ 높이의 작은 규모이지만 본존불로 조성된 이 불상에서는 1997년 묘법연화경과 다라니경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으며, 이 때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자세히 밝힌 조성발원문도 발견되었다.

얼굴 형태나 착의법 또한 17세기 중엽의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며, 불상의 조성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17세기에 조성된 불상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조각승인 조능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작품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1950년대에 봉서사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청룡사로 모셔왔다고 전한다.

  • 다른 자료에서 설명되는 특징 중 '조능의 불상은 귀나 손가락 표현이 혜희의 방식과 유사하여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법령의 조각유파가 혜희를 거쳐 점차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넣을 것인지..?
  • 언제 어떤 경로로 청룡사에서 소장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음.

1)한국전쟁 때 인민군 주둔 때문에 / 1958년에 화재로 봉서사가 소실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2)불자가(혹은 어떤 거사가) (탱화와 함께) 불상을 챙겨 10여년간 개인적으로 모셨고,

3)(1950년대에 당시 주지스님이 / 1963년 월정스님이 / 1970년대에 관음전을 중건하면서 주지 스님이) 청룡사로 모셔왔다고 전한다.

  • 청룡사의 재건 연혁에 대한 설명에 차이가 있음. -> 1954년 용봉스님이 토굴을 만들어 다시 수도처로 삼았다. 1963년 월정스님이 가람을 정비하면서 용천암이라 이름 붙였다가 1983년에 청룡사로 개명하였다. / 혜덕왕사가 금산사 중창과 더불어 모악산 내에 40여개의 암자를 세웠는데 이 곳이 청룡사의 전신인 용장사이고 1954년 용봉 스님이 복원하면서 청룡사로 개칭하였다.

1차 수정

이 불상은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1655년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며 조성되었으며,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조능 외에 6명의 조각승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본래 완주 봉서사 향로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1950년대에 봉서사가 화재로 소실된 이후 청룡사로 옮겨왔다. 1997년에는 불상 내부에서 묘법연화경과 다라니경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으며, 이때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자세히 밝힌 조성발원문도 발견되었다.

나무로 만든 후 금을 덧입힌 불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관은 최근에 새로 제작하였다.

자문의견

  1. 불교문화재 위원1
    • 직접 수정
  2. 불교문화재 위원2
    • 두 번째 문장 주어 필요.(1655년 왕실의 안녕과~) 누가 왕실의 안녕을 빌며 조성했는지? (이때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적시하기 바람. 현재는 조각승 조능과 6인 만 썼음).
    • “이 불상은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빼는 게 좋겠음. 관음이 자비를 상징하기 위해 존재하는 보살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음.
    • 그래서 조각사적 가치는 무엇인지?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사람의 이름 등 고유명사에 한문 추가 필요. 조능 → 조능(祖能)
    • 조각승에 대한 설명 추가 필요
    • 발원문에 대한 설명 추가. → 발원문에는 왕실의 수명장수와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는 내용과 이 상이 45cm의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협시보살이 아닌 전각의 주인인 주존불로 조성되었음을 알수 있다.
    • 명칭 한자 부기 추가

2차 수정

이 불상은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로, 1655년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며 조성되었다.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승려조각가 조능(祖能) 외에 6명의 승려조각가가 제작에 참여하였다.

본래 완주 봉서사 향로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1950년대에 봉서사가 화재로 소실된 이후 청룡사로 옮겨졌다. 1997년에는 불상 내부에 있던 묘법연화경과 다라니경, 조성발원문 등의 복장물을 통해,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알게 되었다.

불상의 재료는 나무이고 만든 후 금박을 덧입혔으며,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올렸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보관은 최근에 새로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