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국민성금 헌납기(T-6 건국기)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T-6 건국기는 우리 국민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최초의 항공기이다.

1949년 빈약한 공군력의 보강을 위해 “우리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구입하자”는 항공기 구입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50년 5월 당시 30만 달러가 모금되어 캐나다에서 T-6 10대를 도입하고 ‘건국기’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성금을 헌납한 단체에 따라 전남학도 제1호, 충남 제1호, 농민 제1호 등 별도의 이름을 비행기에 부여하였다.

T-6는 기본훈련 및 경공격기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병기창에서 제작한 국산 폭탄을 장착하고 출격하여 적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기여하였고, F-51D 전투기(국가등록문화재 제666호) 도입 이후에는 정찰 및 연락기로 운용되었다. 휴전 후에는 정예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로 활용되었다.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통하여 국민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항공기로서 군과 국민의 상호 신뢰적 관계를 상징하며, 자주국방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1차 수정

T-6 건국기는 우리 국민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최초의 항공기이다.

1949년 빈약한 공군력의 보강을 위해 “우리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구입하자”는 항공기 구입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50년 5월 당시 30만 달러가 모금되어 캐나다에서 T-6 10대를 도입하고 ‘건국기’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성금을 헌납한 단체에 따라 전남학도 제1호, 충남 제1호, 농민 제1호 등 별도의 이름을 비행기에 부여하였다.

T-6는 기본훈련 및 경공격기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병기창에서 제작한 국산 폭탄을 장착하고 출격하여 적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기여하였고, F-51D 전투기(국가등록문화재 제666호) 도입 이후에는 정찰 및 연락기로 운용되었다. 휴전 후에는 정예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로 활용되었다.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통하여 구입한 항공기로서 군과 국민의 상호 신뢰적 관계를 상징하며, 자주국방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1962년 12월에 퇴역할 때까지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한 항공기가 되었다.
    • T-6 건국기는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통하여 구입한 항공기로서 군과 국민의 상호신뢰 관계를 상징하며, 한국전쟁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목숨을 걸고 조국을 수호한 자주국방의 의지가 담겨 있다.
    •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41일 전의 일이다.
    •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공군은 이 기종에 육군 병기창에서 만든 국산 폭탄을 장착한 후 출격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더디게 했고, F-51D 전투기(국가등록문화재 제666호)를 도입하고는 정찰기와 연락기로 활용했다.

2차 수정

T-6 건국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항공기이다.

1945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공군의 전신인 항공사령부는 빈약한 공군력을 보강하기 위해 미국에 항공기 원조를 요구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에 1949년부터 “우리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구입하자”는 항공기 구입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50년 5월 당시 30만 달러가 모금되어 캐나다에서 T-6 10대를 도입하고 ‘건국기’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성금을 헌납한 단체에 따라 전남학도 제1호, 충남 제1호, 농민 제1호 등 별도의 이름을 비행기에 부여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40여 일 전의 일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공군은 이 기종에 육군 병기창에서 만든 국산 폭탄을 장착한 후 출격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더디게 했다. 같은해 F-51D 전투기(국가등록문화재 제666호)를 도입한 뒤에는 정찰기와 연락기로 활용했다. 휴전 후 정예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로 활용되었으며, 1962년 12월에 퇴역할 때까지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하였다.

T-6 건국기는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통하여 구입한 항공기로서 군과 국민의 상호신뢰 관계를 상징하며, 한국전쟁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목숨을 걸고 조국을 수호한 자주국방의 의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