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광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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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방에 설치된 국가교육기관이다. 공자 등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배움 공간인 명륜당이 중심 건물이다. 광양향교는 조선 태조 때인 1397년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광해군 때인 1613년 광양현감과 유림이 힘을 모아 대성전을 중건했고 이후 연차적으로 여러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6.25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1966년 출입문인 풍화루를 시작으로 다시 짓기 시작해 현재는 대성전, 명륜당 등 건물 9동이 있다. 향교 건물을 경사진 터에 세울 때는 일반적으로 전면에 강학 공간, 뒷면에 배향 공간을 두는 전학후묘(轉學後廟) 형식을 갖추지만 광양향교는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편이다.

수정 국문

초고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광양향교는 조선 건국 후 전국적인 확대 정책에 따라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계기로 재건과 소실이 반복되었다. 향교의 중건(重建)은 당시 현감 남내원(南來爰)의 주도로 이루어진 1613년(광해군 5)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한 1784년(정조 8)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여,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고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하였다.

광양향교의 부속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풍화루,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재(上齋), 재실(齋室), 신문(神門),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방식이 일반적인데, 광양향교는 대성전을 명륜당의 왼쪽에 두고 있는 좌우배치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1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광양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향교의 중건은 당시 현감 남내원(南來爰)의 주도로 이루어진 광해군 5년(1613)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한 정조 8년(1784)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여,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고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하였다.

광양향교의 부속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풍화루,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재(上齋), 재실(齋室), 신문(神門), 창고 등이 있다. 일반적인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방식이 일반적인데, 광양향교는 대성전을 명륜당의 왼쪽에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여러 차례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 여러차례 소실되고 중수되었다
    • 을~을 반복 삭제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 향교의 중건은 당시 현감 남내원(南來爰)의 주도로 이루어진 광해군 5년(1613) --> 향교의 중건은 광해군 5년(1613)과 : 현재 광양문화원과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의 기록으로는 남내원이 아닌 것으로 추정됨 “이오”로 추정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삭제를 제안합니다
    • 시작하여 --> 진행하였고 로 제안합니다
    • 일반적인 --> 반복사용 삭제를 제안합니다
    • 수정본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 짓는 법을 가르쳤다.
      광양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여러차례 소실되고 중수되었다. 향교의 중건은 광해군 5년(1613)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한 정조 8년(1784)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진행하였고,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고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입혔다.
      광양향교의 부속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풍화루,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재(上齋), 재실(齋室), 신문(神門), 창고 등이 있다.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방식이 일반적인데, 광양향교는 대성전을 명륜당의 왼쪽에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광양향교는 『광양군지(光陽郡誌)』 (1925)에 수록된 ‘대성전중건상량문(大成殿重建上樑文)’에 “병(丙)년에 창설 하기 시작하여 정(丁)년에 완성하니”의 기록에서 1396-1397년(태조 6) 건립되었다고 추정한다.
      『광양군지』 에 따르면 1658-1660년(현종 1)에 걸쳐 명륜당, 문루 및 동재∙서재를 건립되었고 1613년에는 대성전만 재건되었으며, 1658년경에 대부분 재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765년(영조 41)과 1817년(순조 17)에 풍화루와 대성전이 각각 중건되었고, 1903년(광무 7)에 명륜당, 동재, 상재 등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1977년 명륜당을 중건하였고 동∙서재의 보수와 대성전 및 풍화루의 단청공사를 하였고, 1982년에는 대성전∙재실 등이 수리되어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2002년에 걸쳐 대성전∙상재 및 제기고 담장을 개축하고 명륜당∙직사재(덕성재) 및 제기고 기단을 보수하였다.

      향교의 중건은 당시 현감 남내원(南來爰)의 주도로 이루어진 광해군 5년(1613)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한 정조 8년(1784)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여,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고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하였다.
      광양향교의 부속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풍화루,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재(上齋), 재실(齋室), 신문(神門), 창고 등이 있다. 일반적인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방식이 일반적인데, 광양향교는 대성전을 명륜당의 왼쪽에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광양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향교의 중건은 당시 현감 남내원(南來爰)의 주도로 이루어진 광해군 5년(1613)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하여 세운 정조 8년(1784)의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으로,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였으며,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하였다.
    •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2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광양향교는 태조 5년(1396)과 태조 6년(1397) 사이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향교의 중건은 광해군 5년(1613)과 광양 선비들이 주도하여 당시 현감 우정규(禹禎圭)와 함께 계획한 정조 8년(1784)이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진행하였고, 1971년에는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고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입혔다.

광양향교의 부속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풍화루,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재(上齋), 재실(齋室), 신문(神門), 창고 등이 있다.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방식이 일반적인데, 광양향교는 대성전을 명륜당의 왼쪽에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에는 유교(儒敎)를 대표하는 중국의 5성(五聖)과 4현(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