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건봉사 불이문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로, 다포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돌기둥에는 길이 90cm 크기의 도안화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天王門)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본탠 것을 의미한다.

상단 중앙에 걸려있는 불이문 현판은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이문은 사찰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3개의 문 중 마지막 문으로, 여기를 지나면 본당이 바로 보인다. '불이(不二)'라는 문의 이름은 진리가 둘이 아님을 뜻하며,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건봉사의 불이문은 1920년에 세워졌으며, 건봉사 경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지지 않은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은 돌로 된 원기둥 위에 짧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4개의 돌기둥에는 모두 사찰을 수호하는 의미를 가진 금강저*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현판은 서화가 김규진(1868-1933)이 썼다.

강원도 최북단에 자리한 사찰 건봉사(乾鳳寺)는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원각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가 되찾아 온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꼽힐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규모의 가람이었지만 한국전쟁 중 고성 지역에서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이후 1994년부터 지금까지 사찰 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 금강저(金剛杵): 승려가 불도를 닦을 때 스는 법구의 하나로, 번뇌를 깨뜨리는 보리심을 상징함.

1차 수정

불이문은 건봉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건봉사 경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불이(不二)’란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하며, 사찰 앞에 세운 문을 불이문이라 한 것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한다.

건물은 원통형으로 다듬은 4개의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각 돌기둥에 새겨진 문양은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인 금강저(金剛杵)를 나타낸 것이다. 금강저는 원래 고대 인도의 무기로, 부처를 수호하고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진입 공간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 세 개의 문을 지나도록 구성되며, 이 중에서 천왕문은 부처의 가르침과 불국 정토를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공간이다. 건봉사는 천왕문을 따로 세우지 않고, 불이문에 금강저를 새겨서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더하고자 하였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서화가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