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완석정 및 정역일기 일괄
| 칠곡 완석정 및 정역일기 일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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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칠곡 완석정 및 정역일기 일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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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漆谷 浣石亭 및 亭役日記 일괄 |
|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03-2 |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2026년 5월 14 |
| 분류 | 유적건조물 |
| 수량/면적 | 1동, 9권 |
| 웹사이트 | 칠곡 완석정 및 정역일기 일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완석정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관료인 이언영(李彦英)이 1621년에 지은 정자이다. 이언영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을 도와 공을 세웠으며, 선조 36년(1603)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광해군 6년(1614)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면서 역적으로 몰린 정온(鄭蘊)을 변호하다가 탄핵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정자를 지었다. 그는 “풍진에 찌든 심신을 씻어 다시 의롭게 하겠다”는 뜻을 담아 정자의 이름을 “완석정”으로 하고 자신의 호(號)로도 사용하였다.
본래 완석정은 성주의 낙동강 가에 세워졌으나, 두 차례 옮겨 지어 1938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건물은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에 ‘서운료(棲雲寮)’와 ‘양월헌(養月軒)’이라는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부재를 다듬은 방식과 기둥의 이음 방식, 도리* 상부에 연목받침재를 사용한 수법 등에서 전통 건축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정역일기는 완석정을 옮겨 지을 당시의 과정을 기록한 총 9권의 기록물이다. 공사 참여자, 자재와 비용의 조달 및 지출 내역 그리고 당시의 풍속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근대기 민간 건축의 진행 과정과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 정언: 조선 시대 사간원의 정6품 관직으로 임금의 잘못을 직언으로 그치게 하는 언론의 기능을 수행했다.
- 도리 : 서까래를 얹으려고 기둥 위에 대들보와 직각의 방향으로 놓는 나무를 말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완석정은 조선시대의 유학자이자 문신인 이언영(1568-1639)이 1621년에 지었다. 본래 지금의 성주 선남면 지역 낙동강 가에 세워졌다가, 두 차례 옮겨 지어 1938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이언영은 칠곡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160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1614년 사간원에서 간쟁을 담당하는 관직을 맡았으며, 역적으로 몰린 정온(1641-1569)을 변호하다가 탄핵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정자를 지었다. ‘완석’이라는 이름은 정자 앞에 있던 큰 바위가 강물에 씻겨지는 모습에서 유래하였으며, “세상사에 더럽혀진 심신을 씻어 다시 의롭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완석정은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부재를 다듬은 방식과 기둥의 이음 방식, 도리 상부에 연목받침재를 사용한 수법 등에서 전통 건축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정역일기는 완석정을 옮겨 지을 당시의 과정을 기록한 총 9권의 기록물이다. 공사 참여자, 자재와 비용의 조달 및 지출 내역 그리고 당시의 풍속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20세기 민간 건축의 진행 과정과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