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식 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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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식 선생 공적비
Stele of Choe Myeon-sik
디지털포천문화대전
대표명칭 최면식 선생 공적비
영문명칭 Stele of Choe Myeon-sik
한자 崔勉植 先生 功績碑
주소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829-3
지정(등록) 종목 포천시 향토유적 제20호
지정(등록)일 1986년 4월 9일
소유자 사유



해설문

국문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최면식(崔勉植, 1891~1941)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82년 포천 독립 유공비 건립 위원회에서 세운 비이다.

최면식은 위정척사사상과 항일운동으로 유명한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손자이다. 1910년 국외로 망명했으며,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및 무기조달에 전념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6년 광복단 조직을 위해 기호지방에서 활동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1917년 김좌진(金佐鎭, 1889~1930) 등이 이끄는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다시 국내에 잠입하여 전라도 지역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목포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한광복회의 재건에 힘쓰다가 1921년 또다시 체포되었다. 무기수로 공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환이 악화되어 출옥한 뒤 순국했다. 1977년에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영문

Stele of Choe Myeon-sik

This stele was erected in 1982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Choe Myeon-sik (1891-1941), a colonial independence activist born in Pocheon.

Choe Myeon-sik was the grandson of the civil official Choe Ik-hyeon (1833-1906), known for his role in leading a civilian army against Japanese authorities following the illegal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of 1905. When Korea became a Japanese colony in 1910, Choe defected abroad but came back to smuggle weapons and funds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For these activities, he was arrested and imprisoned in Seodaemun Prison. After his release, he went to Manchuria in 1916 and joined the Society for the Liberation of Korea led by Kim Jwa-jin (1889-1930) in 1917. He came back to Korea to collect funds in the prosperous Jeolla region but was again arrested and imprisoned in Mokpo. When he was released, he tried to reestablish the Society for the Liberation of Korea but was arrested again in 1921. Although he received a life sentence, he was released early to be medically treated for torture wounds, but died soon after. He was posthumously awarded a presidential citation for the independence patriots in 1977, the National Foundation Medal in 1980, an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