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박광우 묘 출토유물
청주 박광우 묘 출토유물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Bak Gwang-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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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주 박광우 묘 출토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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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Bak Gwang-u |
한자 | 淸原 朴光佑 墓 出土遺物 |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수대1길 38-16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6호 |
지정(등록)일 | 1982년 12월 17일 |
분류 | 유물 |
수량/면적 | 3점 |
웹사이트 | 청주 박광우 묘 출토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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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 유물은 조선 전기 문신 박광우(1495~1545)의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것이다. 박광우는 중종 20년(1525) 과거에 급제하여 강릉부사(江陵府使) 등의 관직을 거쳤으며, 조선 전기 대표적인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출토된 유물은 이중 구조의 관과 청동방울, 백자 명기(明器)* 등 3건이다. 향나무로 만든 관의 안쪽 바닥에는 7개의 구멍을 뚫은 칠성판(七星板)이 깔려 있으며, 시신의 발치에서는 청동방울 5점이 발견되었다. 백자 명기는 소형 항아리 형태로 목이 짧은 입술 부분이 특색이며, 연꽃 봉오리 모양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다.
박광우 묘 출토 유물은 조선 전기 당시 묘제 및 풍습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 명기(明器): 장사 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그릇. 무덤에 함께 묻으려고 실물보다 작게 상징적으로 만든다.
영문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Bak Gwang-u
Thes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the civil official Bak Gwang-u (1495-1545) include a coffin made of juniper wood, five bronze bells, and a white porcelain jar.
Bak Gwang-u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25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Convicted of involvement in the literati purge of 1545, Bak was tortured and sent into exile but died before he could arrive at his exile destination. His tomb, originally located in Paju, Gyeonggi-do Province,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7. These artifacts were discovered during the moving of the tomb.
The coffin consists of an inner part and an outer part. One of the boards at the bottom of the inner coffin features seven holes representing the Seven Stars of the Big Dipper, who are Korean folk deities believed to take the souls of the departed to the world of the afterlife. The white porcelain jar is an example of a popular burial artifact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was made smaller than jars made for actual use. The bronze bells were discovered at the feet of the body.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박광우(1495-1545)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로, 향나무로 만든 관, 청동방울 5점, 백자 항아리 1점이다.
박광우는 1525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45년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가던 중 사망하였다. 박광우의 묘는 원래 경기도 파주에 있었으나 1977년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관은 내관과 외관의 이중구조이다. 내관 바닥에 7개의 구멍을 낸 널빤지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이 망자를 내세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자 항아리는 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부장품 중 하나로, 실제 사용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청동방울은 시신의 발 밑에서 발견되었다.
참고자료
- 청주 박광우 묘 출토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443300060000
- (1108) 방울 갖다 놓아라, 하얀 찔레꽃,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jileecon/221485965956 -> 이장 당시 있었던 일화 (방울 5개로 언급)
- 칠성판, 한국일생의례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484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본떠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있으며, 염습殮襲한 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棺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판. 조선조 이후 상례에 비로소 등장하는 칠성판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인간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로서 북두칠성을 신앙하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칠성판에는 북두칠성이 사람의 수명을 주관하며 망자를 내세로 인도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 박광우묘출토유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0554 ->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 박광우의 묘는 원래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오산리에 있었다. 묘의 위치가 해방 이후 육군 작전지역 내에 있었기 때문에 후손들의 출입이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묘 관리와 성묘를 제때에 할 수가 없었다. 이에 부득이 1967년 2월 28일에 현재 위치인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수대리로 이장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관곽(棺槨)과 청동령(靑銅鈴), 백자소호(白磁小壺)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숭인사(崇仁祠)에 관곽 진품과 청동령·백자소호 복제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청동령·백자소호 진품은 박재훈(朴在勳, 박광우의 15世孫)이 현재 소장·관리하고 있다. 숭인사는 1990년 12월 30일에 준공된 박광우의 사당이며, 그의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제71호, 1987년 3월 31일 지정)는 이 곳에서 위로 100여m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99년 10월 9일 성역화 사업이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