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면암고택
| 청양 면암고택 |
|
| 대표명칭 | 청양 면암고택 |
|---|---|
| 한자 | 靑陽 勉菴古宅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2023년 5월 30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지 |
| 시대 | 조선후기(1893년) |
| 수량/면적 | 3/안채(125.6㎡), 사랑채(170.8㎡), 사당(49.1㎡) |
| 웹사이트 | 청양 면암고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면암 고택은 최익현선생이 68세가 되던 1900년에 이주하여 약 6여 년간 거주하였던 가옥이다.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조선말기 개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대표적인 위정척사파 문인 관료이자 우국지사이다. 선생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두 차례 유배제주도, 흑산도되기도 하였다. 최익현은 이렇게 혼란한 시기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다.
고택은 사랑채(중화당)와 안채, 경주최씨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영모재(永慕齋)가 일곽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에서 발견된 상량 묵서에 의해 1893년에 건립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고택은 사대부 가옥의 건축 구성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고 조선시대 살림집의 유형을 따르고 있어 중부지방 양반 가옥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사랑채(중화당)는 안채를 감싸안고 있는 형태인데 중문간으로 한번 꺾어 안채로 진입하는 방식은 남자는 밖에 거처하고 여자는 안에 거처했던 전통적 내외관념이 건축적 구성으로 잘 나타나 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영모재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제사를 이어오고 있다.
고택은 최익현선생이 삶의 마지막 시기에 거주했던 곳으로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고, 항일 의병의 구심점 역할을 한 역사적 활동이 이 고택을 근거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또한 최익현 사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인 모덕사(1914년)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점도 고택이 갖는 공간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면암고택은 1893년에 건립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항일운동가인 최익현(1833-1907, 호: 면암)이 1900년부터 약 6년간 거주하였던 가옥이다.
최익현은 조선 말기 개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대표적인 관료이자 우국지사이다. 최익현은 고종(재위 1863-1907) 때 섭정을 하던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두 차례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후 혼란한 시기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정착하였다.
고택은 사랑채인 중화당, 안채, 최익현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영모재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부 가옥의 건축 구성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어, 한반도 중부지방 양반 가옥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사랑채는 안채를 감싸안고 있는 형태인데 중문간으로 한번 꺾어 안채로 진입하는 방식은 남자는 밖에 거처하고 여자는 안에 거처했던 전통적 내외관념이 건축적 구성으로 잘 나타나 있는 구조이다. 사당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제사를 이어오고 있다.
고택은 최익현이 삶의 마지막 시기에 거주했던 곳으로, 항일 운동 및 의병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역사적 활동이 이 고택을 근거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고택 앞에는 최익현을 기리기 위해 1914년에 건립한 모덕사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