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제공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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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선생 묘
Tomb of Chae Je-gong
채제공 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채제공 선생 묘
영문명칭 Tomb of Chae Je-gong
한자 蔡濟恭 先生 墓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산5번지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7호
지정일 1973년 7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채제공 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번암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조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동한 관료이다. 그는 영조 19년(1743)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청요직*인 예문관 사관직을 거쳤다. 채제공은 문한으로서의 능력과 관료로서의 실무 능력을 두루 인정받았으며 이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아가 균역법의 폐단과 변방의 군사적 대비에 대한 문제를 진언하였다. 내직으로 복귀한 후에는 승정원 동부승지와 대사간 등을 거쳐 도승지로 임명되었다.

영조 34년(1758)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가 악화되고 세자 폐위가 결정되자 채제공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자 폐위를 막아 철회시켰다. 이를 두고 후일 영조는 정조에게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1776년 영조가 죽자 국왕의 장례 행사를 주관하는 국장도감제조에 임명되었다. 이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할 때 형조판서 겸 판의금부사로서 옥사를 결정하였다. 정조 원년부터 약 8년간 소론의 공격을 받아 칩거하였으나 정조 13년(1788) 우의정에 특채된 후 영의정에 올라 수원 화성을 건립하는 성역(城役)을 담당하다가 정조 23년(1798) 사직하였다.

묘는 홀로 안장되어 있으며 봉분 앞으로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석양(石羊)이 한 쌍씩 있다. 묘 아래 신도비가 없는데, 그 이유는 묘소에서 약 80m 가량 내려가면 정조가 채제공을 애도하며 친히 글을 지은 어제(御製) 뇌문비(誄文碑)가 있기 때문이다.


  • 청요직: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맡았던 청직과 요직을 함께 일컫는 말

영문

Tomb of Chae Je-gong

This is the tomb of Chae Je-gong (1720-1799), a renowned politicia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Chae Je-g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743 and served as a civil official during the reigns of Kings Yeongjo (r. 1724-1776) and Jeongjo (r. 1776-1800). Recognized as a talented writer and a competent politician, he held many high-ranking posts, including that of chief royal secretary, minister of war, governor of Pyeongan-do Province, third state councilor, second state councilor, and chief state councilor. He was also a proponent of several important reforms.

Chae was a cherished confidant of both Kings Yeongjo and Jeongjo, who were grandfather and grandson. At the time of Chae’s appointment as chief royal secretary in 1758, Yeongjo had ordered that his son Crown Prince Sado (1735-1762), who was Jeongjo’s father, be taken out of the line of succession, but Chae persuaded him to rescind the order. However, continued personal conflict and political strife led ultimately to Crown Prince Sado’s execution, which put Jeongjo first in line to the throne. It is said that Yeongjo once told Jeongjo that “Chae Je-gong is truly my selfless vassal and your loyal subject.” Upon King Yeongjo’s death, Chae was given the responsibility of overseeing the royal funeral.

After becoming king, Jeongjo made great efforts to reinstate his late father’s honor. And, as minister of punishments, Chae Je-gong punished those responsible for Prince Sado’s death. In 1789, Jeongjo entrusted Chae with overseeing the construction and management of Hwaseong Fortress, which Chae did until his retirement due to old age in 1798.

There are several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earthen burial mound, including a table, an incense table, a pair of pillars, and a pair of sheep statues. It was common for steles that commemorate a person’s life and achievements to be erected at the tombs of high-ranking civil officials and renowned scholars. However, the stele of Chae Je-gong, located 80 m to the southwest of his tomb, is special in that it is inscribed with a message of condolence personally composed by King Jeongjo.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명재상 채제공(1720-1799)의 묘이다.

채제공은 1743년 과거에 급제한 후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조(재위 1776-1800) 두 국왕을 거치며 관직 생활을 하였다. 문장가로서의 능력과 관료로서의 실무 능력을 두루 인정받아, 도승지, 병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고위 관직을 지냈으며, 여러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채제공은 영조와 정조 모두에게 신임을 받은 신하였다. 채제공이 도승지로 임명된 1758년, 영조는 자신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1735-1762)의 세자 폐위를 명하였으나, 당시 채제공이 왕을 설득하여 이를 철회하였다. 그러나 왕과 세자 사이의 갈등은 계속 커졌고 둘을 둘러싼 정쟁까지 심화되면서, 사도세자는 결국 처형 당하였으며 정조가 영조의 뒤를 잇게 되었다. 영조가 정조에게 “(채제공이야말로)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이야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왕의 장례 행사를 주관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채제공은 형조판서로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였다. 그리고 정조의 명으로 1789년 화성 건설이 시작되면서, 채제공은 1798년 노환으로 사직할 때까지 화성 건설과 운영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이 있고, 양옆에 망주석과 석양이 한 쌍씩 있다. 원래 고위 관리나 저명한 학자의 묘 옆에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지는데, 이 묘에는 신도비 대신 정조가 친히 애도하는 글을 지어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조의 글을 새긴 비석은 묘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80m 떨어진 곳에 있다.

참고자료

  • “채제공선생 묘”, 『경기도 문화재 총람 도지정편 2』, 경기도, 경기문화재연구원, 2017, 2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