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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흥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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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흥사지
대표명칭 창녕 용흥사지



해설문

국문

용흥사지는 비슬산 관기봉의 남쪽 능선에 있는 절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북국시대에 고승 관기(觀機)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고려 성종 1년(982) 성범(成梵)에 의해 중창되었지만 불에 타 없어졌다가 고려 말 승려 각료(覺了)와 곽항(郭恒)이 재건하면서 두 승려의 이름을 취하여 ‘요항사(了恒寺)’라 불렸다. 임진왜란(1592) 때 또다시 불에 탔다가 광해군 6년(1614) 승려 지혜(智慧)에 의해 다시 세워지면서 절터에서 ‘용흥(龍興)’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어 ‘용흥사’로 재창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당 8채, 전 6채, 요 6채, 문과 종루, 회랑, 암자 5곳을 둔 경상좌도의 총림*이 되었다. 순조 26년(1826)에 화령옹주의 원당으로 지정된 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1958년에 각료암으로 중건되었다.

용흥사지는 2021년부터 2023년에 걸쳐 이루어진 세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대웅전지, 동원지, 서원지, 문지, 승당지, 담장, 계단, 석축, 기단, 배수로 등이 조사되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가람배치 방식을 따르는 대규모 사찰임이 밝혀졌다.

발굴 과정에서 연화문 수막새, 당초문 암막새, 분청사기편, 백자편, 상평통보, ‘숭정8년(崇禎八年)’, ‘강희52년(康熙五十二年)’ 등이 새겨진 명문기와 등 유물이 발견되어 용흥사의 중창과 운영시기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용흥사지는 남북국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창녕의 비보사찰**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창녕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총림(叢林): 승려들의 참선수행을 위한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
    • 비보사찰(裨補寺刹): 풍수지리적 관념으로 산천의 기운을 점쳐 지덕(地氣)을 보완하기 위해 지정되거나 건립된 사원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