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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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Steles of the Two Ladies from the Sin Family for Their Filial and Matrimonial Devotion, Changnyeong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영문명칭 Steles of the Two Ladies from the Sin Family for Their Filial and Matrimonial Devotion, Changnyeong
한자 昌寧 烈孝辛氏 旌閭碑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문화마을1길 42-3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3호
지정일 1991년 12월 23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는 신사천辛斯蕆의 딸 신씨의 효성과 낭장 김우현金遇賢의 처 신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한 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신사천의 딸 신씨의 효성과 절개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우왕 8년(1382) 왜적이 영산에 침략하여 신사천을 쏴 죽이자 왜적에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으며 이 때의 나이가 스물이었다. 전법판서 조준이 경상도 체복사로 왔다가 이 사연을 듣고 왕에게 고하니 왕은 비를 세우도록 하고 포상을 내렸으며 이 때 세운 것이 「열효신씨지려(烈孝辛氏之閭)」이다.

낭장 김우현의 처 신씨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영산현조 기록에 나와 있으며 남편과 함께 왜적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절부신씨리(節婦辛氏里)」비석이다.

비석은 1982년 발굴되어 도천재실에 보관하다가 1994년 비각과 사당을 새로 지어 그 안에 모셔두었다.

영문

Steles of the Two Ladies from the Sin Family for Their Filial and Matrimonial Devotion, Changnyeong

These steles commemorate filial and matrimonial devotion of two daughters of a man named Sin Sa-cheon (?-1382), who lived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elder daughter was married to the military official Kim U-hyeon. During an attack by Japanese pirates in 1379, she was captured and killed when she refused to give away her husband’s location in an attempt to protect him. The younger daughter died at the age of 20 in 1382 during another attack by Japanese pirates when she attempted to fight the enemy after they had killed her father and tried to put their hands on her.

In 1415, a commemoration was bestowed to these two ladies in recognition of their filial and matrimonial devotion. The steles were re-discovered in 1982, and in 1994, the current protective pavilion was built to house the steles.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인물인 신사천(?-1382)의 두 딸의 효행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비이다.

신사천의 큰딸은 무관인 김우현의 아내였다. 1379년 왜적이 침입했을 때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고 버티다가 왜적에게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작은딸은 1382년 왜적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잡아가려 하자 왜적을 발로 차며 저항하였고, 20세의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두 딸을 기리는 정려가 1415년에 내려졌다. 비석은 1982년에 발굴되었으며,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1994년에 세워졌다.

참고

  • 비석은 1982년 발굴되었으며, 절부 신씨의 비석은 후에 다시 개수改竪한 것을 발굴한 것으로 보인다. -> 지자체 제공 문안 내 기록 / 사실 확인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