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창녕 성사제 망제단 비석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창녕 성사제 망제단 비석
대표명칭 창녕 성사제 망제단 비석



해설문

국문

망제단이란 먼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창녕 성사제 망제단 비석은 고려 말의 충신인 성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묘소를 대신하여 세운 것이다.

순조 10년(1810) 창녕 성사제 신도비(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세워진 이후 고종 8년(1871) 정절공으로 추증*된 이듬해 망제단 비석이 세워졌다.

성사제는 공양왕 때 보문각 직제학의 관직을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를 한탄하며 자리에서 물러나 끝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두문동은 경기도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를 이르는 지역이나 고려 말 72명의 신하들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관직을 거부하고 숨어지내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비석은 조선 후기 신도비의 형태를 따라 비신과 옥개석을 갖추었다. 비석의 형태는 일반적이나 비문에 두문동 72현으로 알려진 성사제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다.


  •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관료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