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광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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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광산서당
Gwa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창녕 광산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광산서당
영문명칭 Gwa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한자 昌寧 光山書堂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유어장마로 415 (광산리)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69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창녕 광산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광산서당은 병자호란 때 활약한 양훤(楊喧)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서당은 현재의 초·중등학교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광산서당은 서당 건물 내부에 먹으로 쓴 기록에 따르면 193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양훤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무찌르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일으켜 싸웠는데,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고 난 뒤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광산서당은 문중의 문집(文集)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청주 양씨 후손들이 후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영문

Gwa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Village study halls, called seodang in Korean, were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This was originally the site of Gwa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built in 1795 in honor of scholar Yang Hwon (1597-1650).

During the Manchu invasion in 1636, Yang Hwon mobilized troops to fight back the invaders. When King Injo (r. 1623-1649) finally surrendered to Qing China, Yang Hwon refused to pursue a political career and instead, dedicated his life to teaching the young generation of students.

In 1868, Gwa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was demolished, as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following a nationwide decree. In 1899, the descendants of Yang Hwon built a village study hall on the same spot.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이곳에는 원래 1795년 조선시대의 학자인 양훤(1597-1650)을 기리는 광산서원이 세워졌다.

양훤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인조(재위 1623-1649)가 청에게 항복한 후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광산서원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1899년 양훤의 후손들이 옛 서원터에 서당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