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평거동 석조여래좌상
진주 평거동 석조여래좌상 Stone Seated Buddha in Pyeonggeo-dong, J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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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주 평거동 석조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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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Seated Buddha in Pyeonggeo-dong, Jinju |
한자 | 晉州 平居洞 石造如來坐像 |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로 143번길 15(용화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2월 16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수량/면적 | 1軀 |
웹사이트 | 진주 평거동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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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평거동 석조여래좌상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신안사(新安寺)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현재 이곳 용화사의 대웅전으로 옮겨와 봉안하고 있다. 가부좌를 한 이 불상은 광배가 남아 있으나 부분적으로 훼손된 곳이 있다. 특히 훼손이 심한 얼굴 부분은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석가모니여래가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광배의 불꽃무늬 넝쿨,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이 보인다. 그러나 옷의 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하는 등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 양식을 이은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의 남부 지역 불상의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영문
Stone Seated Buddha in Pyeonggeo-dong, Jinju
This statue depicts Sakyamuni, the historical Buddha who lived in ancient Indi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 local story says that an old man from the village discovered this statue at the former site of Sinansa Temple after repeatedly having a dream in which the Buddha asked to be placed upright. The discovered statue was then erected by a road in the village. Over time the statue became damaged, so the villagers repaired the fractured parts with cement. In 1988, the statue was moved to Yonghwasa Temple, where it was enshrined at the newly renovated Daeungjeon Hall. The cement was taken out, and the severely damaged face and pedestal underwent renovation.
The Buddha holds his left hand in front of his chest with the thumb and the index finger touching, while his right hand rests on his knee with its fingers pointing downwards. This hand gesture symbolizes Sakyamuni’s defeat of the evil that prevents people from attaining the spiritual enlightenment. The Buddha is depicted with a broad chest and shoulders, a slender waist, and a flame-shaped halo around his body. These features appear to be influenced by the Buddhist sculpture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의 한 노인이 자신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하는 부처님 꿈을 반복해서 꾼 후, 신안사라는 절의 옛터에서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후 마을 길가에 세워져 있으면서 훼손되었고, 훼손된 부분을 마을 주민들이 시멘트로 보수했다고 한다. 1988년 중창된 용화사 대웅전에 본존불로 모시면서 불상에 덧발라져 있던 시멘트를 긁어내고, 대좌와 손상이 심했던 얼굴도 새로 보수하였다.
불상의 왼손은 가슴 중앙에서 엄지와 검지를 대고 있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무릎 위에 두고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불이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광배의 불꽃 문양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 경상남도 上, 2019, 문화재청 -> 문안 작성에 주로 참조 / 용화사 주지스님은 용화사가 신안사 후찰이며, 지금 용화사는 보살님이 지키고 있던 법당을 1988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사찰 경내와 주변에서 유물이 보이지 않지만, 사찰을 중창할 때 주변에서 옛 기와편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불상 출토지는 용화사 북쪽 옛 구릉지이며, 지금은 도로와 주차장이 되었다. 한편 신안사에 산사태가 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 처음 불상을 발견한 마을 노인은 ‘부처님이 날 좀 일으켜 달라고 부탁하는 신묘한 꿈’을 반복해서 꾸고 그 땅을 찾아 확인한 결과 불상 어깨가 드러난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불상은 1972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 '평거 석조여래좌상' 국보 승격 추진, 경남일보, 2013.5.16.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596 ->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당시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승병과 민간인 의병 및 관군과 심지어 기생 논개까지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치던 시절, 무기창고이자 중요한 요새였던 신안사는 왜군에 의해 무참하게도 모든 전각이 불태워져 당시 돌로 조성된 부처와 전돌만 땅에 파묻힌 채 무려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사찰의 땅은 조금씩 사유화되어 거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갔지만 이 동네 할아버지가 ‘돌부처님이 날 좀 일으켜 달라고 부탁하는 이상한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면서 그 땅을 찾아 확인했다. 그 결과 불상의 어깨가 드러나면서 통일신라 말 고려 초 때의 불상임이 고증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됐다. / 또 “석불을 몇 평 전각(현재 삼성각 건물)에 옮겨 놓았지만 문화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없어 동네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코와 머리부분을 시커먼 시멘트로 덧발라 놓은 채 방치해 역사적·예술적 가치로는 충분히 보물로 지정받을 만했으나 아쉽게도 지방문화재로 머무르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 출토 시점이 언제인지 정보 없음
- 대좌 및 얼굴 새로 조성한 시점이 언제인지 정보 없음
- 신안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졌다고 한다. / 평거동 사지는 평거동 동사무소 북서쪽 구릉에 있는 신안사 옛 터라고 하는데, 용화사의 스님들은 용화사의 옛 이름이 신안사라고 하므로, 용화사 일원이 신안사의 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