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촉석 정충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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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 정충단비
Stele of Jeongchungdan Altar, Jinju
진주 촉석 정충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촉석 정충단비
영문명칭 Stele of Jeongchungdan Altar, Jinju
한자 晋州 矗石 旌忠檀碑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7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
지정일 1972년 2월 1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진주 촉석 정충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충단비는 선조 26년(1593)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인물들의 충절과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정충단은 진주성의 함락과 함께 순국한 김천일 등 여러 장수와 병사, 백성 등 7만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제단으로 비석에는 그들의 장렬한 행적이 새겨져 있다.

왜군은 1592년 제1차 진주성 싸움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다음 해인 1593년에 10만여 대군을 집결하여 10일 동안 밤낮없이 성을 공격하였다. 비석에는 성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 정충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비석만 남아 있다. 숙종 12년(1686)에 관찰사 서문중(徐文重)이 우병사 이기하, 통제사 김세익과 의논하여 정춘단과 비를 함께 세웠다. 이민서가 글을 짓고 신익상이 글씨를 썼으며 김만중이 비문의 제목인 두전(頭篆)을 썼다.

영문

Stele of Jeongchungdan Altar, Jinju

This stele was established in 1686 together with Jeongchungdan Altar, which was founded to appease the souls of the 70,000 people, including commanders, soldiers, and locals, who were killed in the second battle of Jinjuseong Fortress in 1593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is stele is all that remains of the altar.

To avenge their defeat in the first battle of Jinjuseong Fortress in the previous year, the Japanese army gathered around 100,000 soldiers and attacked the fortress all day and night for 10 days. Government troops, civilian armies, and local residents cooperated to defend the fortress, but the Japanese dug the bottom of the fortress wall to wear down the fortress and, unfortunately, it rained heavily, so the fortress began to collapse. Finally, the fortress fell and the Japanese slaughtered all of those who were inside.

The stele is composed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body stone, and a capstone engraved with two dragons and flower designs. The inscription records the lives of those who were influential at the time of the battle, as well as how Jinjuseong Fortress fell to the enemy.

영문 해설 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1686년에 세운 비이다. 여러 장수, 병사, 백성 등 7만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제단인 정충단과 함께 세워졌으나, 지금은 이 비석만 남아 있다.

왜군은 1592년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듬해 10만여 명의 대군을 모아 10일 동안 밤낮없이 성을 공격하였다. 진주성 내의 관군, 의병, 주민들이 합세하여 대항하였으나, 왜군이 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성벽의 밑바닥을 파내고 불행히도 큰 비가 내려 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성이 함락되고 말았고, 왜군은 성 안에 있던 이들을 모두 학살하였다.

비석은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두 마리의 용과 꽃 문양을 새긴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에는 당시 전투에서 활약했던 이들의 행적과 진주성이 함락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 진주촉석정충단비, 진주 관광 https://www.jinju.go.kr/02793/02258/02282.web?amode=view&idx=506 -> 비문에는 진주성에서 싸우다 순국한 인물에 대하여 기술하고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인물 예시 多)
  • 진주의 옛 건축, 고영훈 지음, 알마 출판사, 2014년. -> 비각 특징 설명 ; 비각은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4면에 살창을 설치했고,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지붕 좌우에는 아래를 둥글게 마감한 풍판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