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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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Stele Bestowed by King Sukjong in Jangheung-ri, Jinju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영문명칭 Stele Bestowed by King Sukjong in Jangheung-ri, Jinju
한자 晋州 長興里 肅宗賜祭文碑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 795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5호
지정(등록)일 2006년 7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숙종사제문비는 연산군이 세자 시절에 시강원에서 벼슬을 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1454 ~1504)에게 숙종이 내려 준 치제문(致祭文)을 새긴 빗돌이다.

이곳은 1718년(숙종44)에 신당서원(新塘書院)이라 사액하고 예조좌랑 이안국을 보내 제를 올리게 하였다.

신당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고 사제문 빗돌만 남아 있다.


  • 조지서(趙之瑞) : 본관은 임천, 호 지족당(知足堂) 1474(성종5) 식년시 별과로 급제하고 1479년 문과 중시에 1등으로 급제해 좌랑, 정당, 창원부사 등을 지냈다 1504년 갑자사화에 휩쓸려 죽었는데 뒤에 회복되었다.

영문

Stele Bestowed by King Sukjong in Jangheung-ri, Jinju

This stele was erected in 1857 and features an epitaph written in 1718 by King Sukjong (r. 1674-1720)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o honor the civil official Jo Ji-seo (1454-1504).

Born in Jinju, Jo Ji-seo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74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became the teacher of the crown prince, who would later become King Yeonsangun (r. 1494-1506). King Yeonsangun has resented that Jo Ji-seo pointed out his mistakes and was a strict teacher, so he had him beheade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04. In 1506, Jo Ji-seo’s honor was posthumously restored.

In 1710, Confucian scholars in the Jinju area established a Confucian academy to commemorate Jo Ji-seo. In 1718, the academy was royally chartered by King Sukjong, who bestowed upon it the name Sindangseowon Confucian Academy and the epitaph that is featured on this stele. The academy was closed in 1871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and this stele, which stood in the courtyard, is all that remains today.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숙종(재위 1674-1720)이 문신 조지서(1454-1504)를 추모하며 1718년에 하사한 제문을 1857년에 돌에 새겨 세운 비석이다.

진주 출신인 조지서는 1474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며, 폭군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다. 연산군은 조지서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엄히 가르친 것을 싫어하였고, 1504년 사화 때 참수하였다. 이후 조지서는 1506년 신원되었다.

1710년 진주 지역 선비들이 조지서를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718년 숙종이 신당서원이라 사액을 내렸고, 제문을 지어 하사했다. 신당서원은 1871년에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서원 마당에 세워졌던 이 비석만 남아있다.

참고자료

  •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 닥마들,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shinh-k791104/6605 -> 현지 안내판 사진
  • 진주 남강이 만든 그윽한 배후습지의 풍경, 지역에서 본 세상, 개인 블로그 https://100in.tistory.com/3515 -> 1718년에는 당시 임금 숙종이 편액을 내리고 제문(祭文)까지 몸소 지어주었다. / 지금도 서원못 바로 앞 길가 공터에 이 제문을 새긴 빗돌(진주장흥리숙종사제문비)이 있다. 신당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71년)으로 헐리어 없어졌고 지금은 1857년 마당에 세워졌던 이 사제문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