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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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생가
Birthplace of Yi Yuksa
이육사 생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육사 생가
영문명칭 Birthplace of Yi Yuksa
한자 李陸史 生家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포도길 8 (태화동)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0호
지정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이육사 생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태어난 집이다. 원래 도산면 원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14세손으로, 본명은 이원록(李源綠)이며 이후 이활(李活)로 개명하였다. 필명으로 쓴 이육사는 항일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 갇혀있을 때의 수감번호 ‘264’에서 음을 따온 것이다. 1925년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면서 총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또한 여러 편의 저항시를 발표하며 항일 정신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베이징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중 40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생가는 팔작지붕을 얹은 사랑채와 맞배지붕을 얹은 안채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지붕 형태만 다르고 크기와 구조가 똑같아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두 건물 사이에 대문을 세운 특이한 형태이다.

영문

Birthplace of Yi Yuksa

This house is the birthplace of Yi Won-rok (1904-1944), better known by his pen name Yi Yuksa, a poet and independence activist p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house was originally located in Woncheon-dong bu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Taehwa-dong in 1976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Yi Won-rok joined the Righteous Patriots Corps (Uiyeoldan), an anarchist resistance organization, in 1925. He went back and forth between China while participating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published several resistance poems and promoted the anti-Japanese and pro-Korean national spirit. He adopted the pen name Yi Yuksa after being assigned as Inmate No. 264 (pronounced yi-yuk-sa in Korean) during his time at the Daegu Prison in 1927. Over the course of his life, he was sent to prison 17 times and ultimately died while being held at the Beijing Prison.

The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with a hip-and-gable roof, a women’s quarters with a gable roof, and a small gate in between them. Apart from the roofs, the size and layout of the men’s and women’s quarters are identical.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이육사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원록(1904-1944)가 태어난 집이다. 원래 원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 현재의 위치인 태화동으로 옮겨 왔다.

이원록은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여러 편의 저항시를 발표하며 항일 정신과 민족 정신을 고취시켰다. 이육사는 필명으로, 1927년 대구형무소에 갇혀있을 때의 수감번호 ‘264’에서 음을 따온 것이다. 평생 총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고, 베이징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중 순국하였다.

생가는 팔작지붕을 얹은 사랑채와 맞배지붕을 얹은 안채가 나란히 있고, 두 건물 사이에 대문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지붕 형태만 다르고 크기와 구조가 똑같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