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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엽, 이재연 부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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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엽·이재연 부자 정려
Commemorative Pavilion of Yi Seok-yeop and Yi Jae-yeon
대표명칭 이석엽·이재연 부자 정려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Yi Seok-yeop and Yi Jae-yeon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형산리 163
지정(등록) 종목 청양군 향토유적 제31호
지정(등록)일 2019년 5월 31일
수량/면적 1동



해설문

국문

이석엽・이재연 부자 정려는 이석엽과 이재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이석엽은 효심을 다해 부모를 모셨고 그의 아들 이재연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재연이 13세에 어머니가 위독하자 변의 맛을 보고 병세를 헤아리는 등 지성으로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어른과 같이 목 놓아 울면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도 어머니와 같이 지극하게 모셨다. 부자가 모두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그 의미가 크다.


  • 시묘살이: 부모의 상중에 3년간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사는 일.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Yi Seok-yeop and Yi Jae-yeon

This pavilion enshrines commemorative plaques honoring Yi Jae-yeon and his father Yi Seok-yeop for their filial devotio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Just like his father Yi Seok-yeop, who devotedly took care of his parents, Yi Jae-yeon was known for his filial piety from an early age. At the age of 13, when his mother became seriously ill, he regularly tasted her stool to monitor her symptoms and nursed her with the utmost attention. When his mother died, he mourned for her at her tomb for the required mourning period of three years while crying and wailing in grief. Yi Jae-yeon diligently took care of his father as well when he fell ill. It is meaningful that both father and son received plaques for their filial piety.


  • Or: "Yi Jae-yeon and his father Yi Seok-yeop" (since Yi Jae-yeon seems to be the main figure in the description). - 안드리 / 좋은 것 같아요 - 린지
  • 언제 내린 건지 정보가 없어요? 시기는 아예 언급 안되고 있어요~

영문 해설 내용

이석엽과 이재연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를 모신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이석엽은 효심을 다해 부모를 모셨고, 이재연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재연이 13세 때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이재연은 어머니 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헤아리고 지성으로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목 놓아 울면서 3년간 무덤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도 지극하게 모셨다. 부자가 모두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그 의미가 크다.

  • 정려 받은 시기나 정려각 세운 시기 모두 확인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