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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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동상
Statue of Lee Bong-chang
이봉창 의사 동상,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정보서비스.
대표명칭 이봉창 의사 동상
영문명칭 Statue of Lee Bong-chang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효창공원 내)
지정(등록) 종목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번호 : 10-1-4
관리자 용산구청(문화체육과)
수량/면적 좌대높이 3m, 동상높이 3.5m
웹사이트 이봉창 의사 동상,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정보서비스.



해설문

국문

이 동상은 1932년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10월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등이 건립하였다.

이봉창 선생은 서울 용산 문창보통학교 졸업 후 용산역 전철수로 근무하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저항하여 사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에 종사하였다.

이후 선생은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웠다.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30일 일본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10월 10일 오전 9시경 시곡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비록 일왕 폭살은 실패했지만 당시 선생의 의거는 중국에서 보도되었고, ‘일왕이 불행히 맞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쓰며 의거가 실패했음을 아쉽게 여기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2002년 본 동상을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영문

Statue of Lee Bong-chang

This statue erected in 1995 commemorates Lee Bong-chang (1901-1932), a prominent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fter graduating from primary school in 1915, Lee worked at a Japanese-owned bakery and later at Yongsan Railway Station as a signalman. However, he resigned due to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s. In 1925, he went to Japan, where he faced even more discrimination and realized that this was all due to Japan’s illegal occupation of Korea. Thus, he decided to jo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1930, Lee went to Shanghai, where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d been established. The following year, he met Kim Gu (1876-1949), the leader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with whom he discussed a plan to assassinate Emperor Hirohito (1901-1989). The assassination attempt was made on January 8, 1932, as the emperor went back to the palace in Tokyo after a military parade. Lee threw a hand grenade at the emperor but missed his target and was arrested by the police. On September 30, 1932, Lee was given a death sentence by the Japanese court and executed on October 10.

In 1946, Lee’s remains were buried in Hyochang Park. In 1962, Lee was posthumously awarded with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This statue was built by the Lee Bong-chang Memorial Association with funds provided by the newspaper Dong-A Ilbo. In 2002, it was designated as a Memorial Facility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영문 해설 내용

이 동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이봉창(1901-1932)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에 건립되었다.

이봉창은 1915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 종업원, 용산역 전철수 등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저항하여 사직하였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도 한국인들이 받는 차별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 모든 것이 나라를 빼앗긴 탓임을 깨닫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30년 이봉창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 당시 한국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김구(1876-1949)를 만나 일왕 히로히토(1901-1989)를 폭살할 계획을 세웠다.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관병식에 참석했다가 궁성으로 돌아가는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일왕에게 명중하지 않았고, 이봉창은 그 자리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봉창은 1932년 9월 30일 일본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0월 10일 오전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이봉창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효창공원에 안장되었고,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봉창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 동상은 1995년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등이 건립하였고, 2002년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참고자료

  • 이봉창 의사 연보,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http://www.leebongchang.org/life/info_2.asp
    • 자료에 따라 이봉창의 생년을 1900년이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영문 안내문에서는 국문과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연보를 참고하여 1901년으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