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탑(호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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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
Memorial Monument
충주 호암지 위령탑 주인공 밝혀졌다”, 충북일보, 2016.07.11.
대표명칭 위령탑
영문명칭 Memorial Monument
한자 慰靈塔



해설문

국문

이 위령탑은 호암지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 1938년 충주수리조합에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암지에서는 1933년 7월 9일 충주 공립보통학교 학생 2명이 수영을 하다 죽었고, 1936년 6월 6일에는 20여 명이 뱃놀이하다가 배가 전복되어 15명이 빠져 죽었으며, 1937년 7월 21일과 22일에 한 사람씩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보다 두 달 전인 1937년 5월 17일에는 호암지 통관 수리 공사를 하던 일본인이 익사한 일도 있었다.

부산일보 1938년 4월 15일(금) 자 신문 기사를 보면, 호암제(虎巖堤)에서 수십 년 동안 ‘마(魔)의 연못’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익사자를 내자 그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400원(현재 가치로 약 8백만원)을 들여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위령탑은 시멘트와 호박돌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높이 1m 정도의 돌이 서 있는 모습이고, 돌에는 ‘慰靈塔(위령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단 앞면에는 ‘충주수○○합(忠州水○○合)’이라 적힌 석재가 박혀 있다. 왼쪽에는 옥개*를 갖춘 석함 형태의 구조물이 위령탑과 같은 형식의 기단 위에 놓여 있다. 이는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물로 친일 청산 관련 법규에 따라 안내판을 세운다.


  • 옥개(屋蓋):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

영문

Memorial Monument

This stone monument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in 1938 by the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to comfort the souls of those who died in Hoamji Reservoir. The reservoir was built in 1932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by colonial authorities. In the following five years, 20 people would drown in the reservoir: two swimmers on July 9, 1933, 15 people in a boat turnover accident on June 6, 1936, one man repairing an irrigation pipe on May 17, 1937, and two more people on July 21 and 22, 1937. Due to the many deaths, the reservoir became known as the “Devil’s Pond” according to an article in the Busan Ilbo dated April 15, 1938. The article also reported that 400 won (equivalent to about eight million won today) was spent to build a monument to comfort the souls of the dead, which is presumed to be referring to this monument.

The monument stands atop a roughly 1 m-tall platform made of boulders and cement. The front of the monument is inscribed with its name Wiryeongtap, meaning “Monument to Comfort the Souls.” An inscription on the front of the platform, while poorly legible, is presumed to read “Chungju Irrigation Association.” Located to the left is another stone monument standing on a similar platform. The monument consists of a rectangular body stone and a roof-shaped capstone.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for the same purpose.

영문 해설 내용

이 위령탑은 호암지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 1938년 충주수리조합에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암지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제에 의해 축조되었고 이후 5년간 20명이 호암지에서 익사하였다. 1933년 7월 9일 2명이 수영을 하다 죽었고, 1936년 6월 6일에는 배가 전복되어 15명이 빠져 죽었으며, 1937년 5월 17일에는 호암지 통관 수리 공사를 하던 일본인이 익사하였고, 1937년 7월 21일과 22일에도 한 사람씩 익사하였다. 부산일보 1938년 4월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호암지는 익사 사고가 많이 발생하여 ‘마(魔)의 연못’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혼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400원(현재 가치로 약 8백만원)을 들여 위령탑의 건립을 추진하였다고 하며, 그 탑이 바로 이 위령탑인 것으로 추정된다.

위령탑은 시멘트와 호박돌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높이 1m 정도의 돌이 서 있는 모습이다. 돌 앞면에는 ‘위령탑’이라고 새겨져 있고, 기단 앞면에 박힌 석재에 새긴 글씨는 일부가 잘 판독되지 않지만 ‘충주수리조합’이라 적힌 것으로 보인다. 이 위령탑의 왼쪽에는 지붕돌을 얹은 석함 형태의 석조물이 위령탑과 같은 형식의 기단 위에 놓여 있다. 이 석조물도 역시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