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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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Unhak-ri
운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운학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Unhak-ri
한자 雲鶴里 古墳群
주소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54번지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58호
지정일 1981년 4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수량/면적 6,040㎡
웹사이트 운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운학리 고분군은 천태산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에 한 줄로 늘어서 있는 3기의 무덤이다. 현재 봉분의 크기는 높이 2m, 직경 14m 정도이나, 원래는 높이가 4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은 위에서 아래로 주검을 넣도록 되어 있는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백제 전기 고분 양식으로는 특이한 것이다. 1971년에 도굴된 무덤을 수습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물들이 나왔는데 그중 일부가 일본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유형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고분은 백제 문화의 일본 전파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영문

Ancient Tombs in Unhak-ri

These three ancient tombs, arranged in a row on a gentle western slope of Cheontaesan Mountain in Unhak-ri,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etween the late 4th and 5th centuries by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he tombs are stone-lined pit tombs in which the body of the deceased was placed into the pit from above and covered with an earthen burial mound. The remaining burial mounds measure on average about 2 m in height and 14 m in diameter, but it is presumed that they could have originally measured up to 4 m in height.

In 1971, the tombs underwent an archaeological survey after having been robbed. Found inside was a belt ornament engraved with dragon patterns, which is similar to those excavated from ancient tombs in Japan. It is an important resource in the research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Baekje and Japan.

영문 해설 내용

운학리 천태산 서쪽 야트막한 언덕에 한 줄로 늘어서 있는 이 3기의 고분은 백제시대인 4세기 말에서 5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들은 위에서 아래로 시신을 넣도록 되어 있는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현재 봉분의 크기는 높이 2m, 직경 14m 정도이나, 원래는 높이가 4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1년 도굴된 무덤을 수습하면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출토된 유물 중 용 문양을 투각한 허리띠 꾸미개는 일본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유형으로, 백제와 일본 간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자료

  • 운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0580000&pageNo=1_1_1_1 -> 천태산 서쪽 구릉지대에 있는 3기의 무덤들이다. 현재 봉분은 유실이 심하여 높이 2m, 길이 14m 정도의 원형무덤으로 처음에는 4m 정도의 높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은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으로 높은 봉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이 지방 특유의 양식으로 백제 전기에 속한다. 도굴에 의해 파괴된 무덤을 정리 조사한 결과 일부 유물이 일본 천황릉의 배총에서 출토된 것들과 같은 유형의 유물이었다.
  • 운학리 고분군, 정읍시 문화관광 도지정 문화재, https://www.jeongeup.go.kr/culture/board/view.jeongeup?boardId=BBS_0000004&menuCd=DOM_000000601004002000&dataSid=208 -> 현재 봉분의 유실(流失)이 심하여 높이 2m, 직경 14m 정도의 원형 고총(圓形 古塚)으로 당초의 높이는 4m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비록 도굴(盜掘)되고 파괴되었지만 수혈식(竪穴式) 석실(石室)의 고총(古塚) 고분(古墳)으로 백제 전기(前期)에 속하며 이 지방에서만 알려진 특유의 것이다. 1970년대에 전주박물관(館長 全榮來)의 파괴분(破壞墳) 정리 조사시, 유물편(遺物片)들이 수습된 바 있었는데 일부 유물들은 일본(日本) 천황릉(天皇陵)의 배총(陪 )에서 출토된 유물과 같은 유형(類型)의 것이 있어 백제 문화의 일본 전파(傳播)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천태산(天台山) 서쪽 구릉(丘陵) 지대는 탑립(塔立)부락 뒷길로 조금 올라가는 쪽으로 그 곳에 세기(三基)의 봉분(封墳)이 있다. 남동(南東)에서 서북(西北)으로 길게 약 330。 방향으로 일렬로 서있는데, 남쪽으로부터 A,B,C로 이름을 붙여 본다. / C호 분묘(墳墓) 가장 북단(北端)의 높은 곳에 있는데, 세 개의 무덤(三基) 가운데 주분(主墳)의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이것 역시 도굴(盜掘)과 토사유세(流洗)로, 높이 2m, 직경 13.7m 에 불과하다. 봉토(封土)에서 지하 1m 지점에 황회토(黃灰土)로 다진 현실(玄室) 바닥이 나타났다. 석실(石室)은 정남북(正南北)으로 긴 방향으로 그 길이가 2.9m,폭 1.37m로써 서쪽벽(西壁)은 할석(割石)으로 쌓았으며 바닥에는 편평(扁平)한 냇돌을 깔았다. 유물은 모두 도굴(盜掘)되었으나 남아 있는 것으로는 금도은제교구 (金途銀製敎具), 철제(鐵製) 칼집, 끝장식, 철지은장금도(鐵地銀張金 塗)의 용문투조과판(龍文透彫誇板) 등이 나왔다. 과판(誇板)은 일본(日本)의 『칠관(七觀)』 분묘 등의 출토(出土)의 예(例)와 수법(手法), 규격(規格) 등이 같으나 한국에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한일 고대문화교류(韓日 古代文化交流)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대(年代)는 오세기(五世紀) 후반기(後半期)로 이 지방 백제전기(百濟前期) 고분(古墳)으로써 첫 예(例)이며 이는 고사부리(古沙夫里)의 고분군(古墳群)으로 보인다.
  • [전북 정읍]주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돌방무덤, 다름이의 귀촌생활, 텃밭과 꽃밭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blee4u/60167418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