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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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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정사
Ungokjeongsa Head House
운곡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운곡정사
영문명칭 Ungokjeongsa Head House
한자 雲谷精舍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로 2297 (순지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0호
지정일 1990년 8월 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운곡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운곡정사는 운문면 순지리에 정착해 살던 경주 김씨 종택으로 이건시 발견된 사랑채 상량 묵서에 ‘숭정기원후을해(崇禎紀元後乙亥)--’라고 해 1695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운문면 순지리 406번지에 위치하였으나 운문댐의 건설로 199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후손인 경재 김몽로(1828년~1884년)는 생가에서 가까운 방음리에 낙화정을 세우고 문인들과 교류하였는데, 운곡정사란 당호는 낙화정이 퇴락한 후 정자에 있던 편액을 가져와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건물은 평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너머로 안채와 사랑채가 二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 뒤편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사랑채 양쪽에는 안채로 출입하는 사주문*과 고방*을 각기 붙인 독특한 외관을 이루며, 사랑마루 우측 방 앞문에 문설주*는 조선시대 한옥건축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사주문: 기둥을 4개 세워 만든 출입문
  • 고방: 창고, 곳간
  • 문설주: 문틀 중간에 세운 기둥으로 양쪽 문을 걸어 고정 함

영문

Ungokjeongsa Head House

Ungokjeongsa Head House was built in 1695 as the head house of a family of the Gyeongju Kim Clan living in Sunji-ri Village.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Initially, it stood around 250 m to the west of its current location, but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93 due to the construction of Unmun Dam.

This house is the birthplace of Kim Mong-ro (1828-1884), a scholar from the Joseon period (1392-1910). Kim Mong-ro built a pavilion named Nakwajeong in the nearby Bangeum-ri Village where he socialized with literati. It is said that when Nakwajeong Pavilion was old and fell into decline, it was moved to his birthplace and the house was named Ungokjeongsa.

The complex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nd a shrine. The men's quarters has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as well as a large storeroom for grains and other foodstuffs next to the room on the left and a gate leading to the women’s quarters next to the room on the right.

영문 해설 내용

운곡정사는 순지리 마을에 살던 경주김씨 가문의 종택으로 1695년에 지어졌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원래 지금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25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운문댐이 건설되면서 199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 집은 조선시대의 학자 김몽로(1828-1884)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김몽로는 순지리 인근의 방음리에 낙화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문인들과 교류하였는데, 낙화정이 낡고 퇴락하자 자신의 생가로 옮겨오면서 집의 이름을 운곡정사라 지었다고 한다.

운곡정사는 대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왼쪽 방 옆에는 고방이 있고, 오른쪽 방 옆에는 안채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사랑채 방의 문틀 중간에는 기둥을 세워 양쪽 문을 고정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중간 기둥은 17세기 경북 지역 가옥의 특징이다.

확인 필요

  • 후손인 경재 김몽로(1828년~1884년)는 생가에서 가까운 방음리에 낙화정을 세우고 문인들과 교류하였는데, 운곡정사란 당호는 낙화정이 퇴락한 후 정자에 있던 편액을 가져와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국문 문안의 이 부분에서 김몽로와 운곡정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 다른 자료에는 김몽로의 호가 ‘운곡’이라고도 하던데,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해석해도 되는지 확인 필요
    • “후손인 김몽로는 생가에서 가까운 방음리에 낙화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이 정자는 김몽로의 호를 따라 ‘운곡정사’라고도 불렸다. 세월이 흘러 낙화정이 퇴락하자, 후손들은 낙화정에 걸려 있던 ‘운곡정사’ 편액을 종택으로 가져왔고, 이후 종택은 운곡정사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