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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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Stele of State Preceptor Hyeono at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영문명칭 Stele of State Preceptor Hyeono at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한자 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지정(등록) 종목 보물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서봉사가 언제 지어졌는지 기록은 없지만 남아 있는 절터의 규모를 보면 아주 큰 절로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절에서 나온 쌀뜨물이 개울을 따라 10리나 흘러 내려가, 왜군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곳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진 것은, 현오국사탑비를 보호할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 있는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고려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보통 스님의 행적을 기리는 탑비는 사리를 모신 부도탑과 함께 건립되는데, 서봉사지에는 부도의 흔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이 비석만 남아 있다. 비석의 형태는 화강암으로 된 받침 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몸돌이 놓인 단출한 모습이다. 비 받침 부분의 윗면은 네 귀퉁이를 비스듬히 잘라 내었고, 비문이 새겨지는 비 몸에도 윗부분의 양귀 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비 몸의 높이는 1.8m, 너비는 0.97m이다.

비문에는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을 쓴 사람은 이지명이며, 글씨를 쓴 사람은 초서로 이름을 날렸던 유공권이다.

비문에 따르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 세속의 성은 왕씨였으며, 속명은 종린이었다.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1178)에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명종은 크게 슬퍼하며 그를 국사로 삼고 ‘현오’라는 시호를 내린 뒤 동림산 기슭에서 다비(화장)하였다고 한다. 현오국사는 대각국사 여풍의 권위를 계승한 대표적인 고승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문

Stele of State Preceptor Hyeono at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This stele was erected in 1185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onk Jongrin (i.e. State Preceptor Hyeono, 1127-1179).

Monk Jongrin was a son of King Injong (r. 1122-1146)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He was ordained as a Buddhist monk in 1141 at Burilsa Temple in Gaeseong and later served as abbot of Gwisinsa Temple in Gimje and Buseoksa Temple in Yeongju. When his older brother ascended the throne as King Uijong (r. 1146-1170), Jongrin was promoted to the post of supreme patriarch, the highest monastic rank. When his younger brother succeeded the throne as King Myeongjong (r. 1170-1197), he was invited to give lectures at the royal palace. Upon the monk’s passing, King Myeongjong, deeply saddened by the loss, posthumously bestowed his brother with the post of state preceptor and the name Hyeono, meaning “Profound Enlightenment.”

The stele consists of a granite pedestal and a slate body stone. The four upper corners of the pedestal are rounded out, while the two upper corners of the body stone are hewn diagonally. The body stone measures 1.8 m in height and 0.97 m in width. The text inscribed on the body stone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s Yi Ji-myeong (1127-1191) and Yu Gong-gwon (1132-1196), respectively.

During the installation of the stele’s protective pavilion in 1979, a roof tile inscribed with the name Seobongsa was discovered, which helped to identify this temple site.

영문 해설 내용

이 탑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현오국사 종린(1127-117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185년에 세워졌다.

종린은 고려 제17대 왕 인종(재위 1122-1146)의 아들로, 1141년 개성 불일사에서 승려가 된 후 김제 귀신사, 영주 부석사 등의 주지를 지냈다. 형인 의종(재위 1146-1170)이 즉위한 후에는 승려의 최고 지위인 승통이 되었다. 동생인 명종(재위 1170-1197)이 즉위한 뒤에는 궁궐에 초청되어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1179년 입적하자 명종은 크게 슬퍼하며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심오한 깨달음”이라는 뜻의 ‘현오’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 탑비는 화강암으로 된 받침돌과 점판암으로 된 몸돌로 이루어져 있다. 받침돌의 윗면은 네 귀퉁이를 비스듬히 잘라 내었고, 몸돌도 윗부분의 양귀 끝을 사선으로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몸돌의 높이는 1.8m, 너비는 0.97m이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문신 이지명(1127-1191)이 지었고, 문신 유공권(1132-1196)이 글씨를 썼다.

1979년 탑비의 비각을 세우는 도중에 “서봉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