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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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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산성
Yongsansanseong Fortress
대표명칭 용산산성
영문명칭 Yongsansanseong Fortress
한자 龍山山城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산리 산15번지 외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99.12.30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소유자 산림청
관리자 경산시장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164,232㎡
웹사이트 용산산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2019

산성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산의 정상부나 경사면에 쌓은 성을 말한다. 용산산성은 높이가 해발 435m이고 용산 정상을 중심으로 경사가 급하지 않은 동쪽과 남쪽 면은 돌로 쌓았고, 경사가 급한 북쪽과 서쪽 면의 일부는 돌과 흙으로 쌓았다. 지금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81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1.5~2.5m이다. 동서남북 네 곳에 문터가 남아있으며, 내부에서는 군사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터 두 곳이 확인된다. 외성에 있는 󰡐무지개샘’은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으며, 용성지역 사람들이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산성 내부에서 채집한 토기와 기와 등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에는 태종무열왕의 아들 김인문이 656년에 지금의 경산지역인 압량주의 군주로 임명되어 백제와의 전투를 대비해 장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때 쌓은 장산성이 용산산성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2026

용산산성은 용성면과 남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용산(해발 435m)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산 정부에 내성(內城)을 두고 그 남·북 저지대에 각각 외성(外城)을 둔 삼중(三重)의 복곽성*이다.

현재 확인되는 성곽의 전체 둘레는 약 2,300m이다. 성벽은 능선에서 바깥 아래쪽 경사지로 조금 빗겨 난 곳에 폭과 높이를 3~4m 정도 되게 쌓은 편축성*으로 추정되지만, 남아 있는 성벽 높이는 약 1.5~2.5m이다. 성벽 안쪽을 따라 폭 약 5~8m의 회곽도(回郭道)*가 조성되어 있다. 내성에서 동·서·남(중문)·북 네 방향의 성문지가 확인되며, 북쪽과 남쪽 외성에서도 성문터와 암문*터가 확인된다. 내성 동쪽 성벽 구간에서는 수구(水口)*도 확인된다. 성 내부에서는 건물지, 집수지, 샘이 있는데, 특히 북쪽 외성의 ‘무지개 샘’은 현재도 물이 솟는 곳으로, 가뭄 시 기우제가 행해지던 장소로 전해진다.

용산산성은 경주–경산–대구를 잇는 교통로를 감시할 수 있는 요충지에 해당하며, 산성의 구조와 여러 시설을 볼 때 장기적인 주둔과 단계적인 방어를 염두에 두고 운영된 성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에 태종무열왕의 아들 김인문(金仁問)이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로 부임하여 축성한 것으로 기록된 장산성(獐山城)과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고고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 복곽성(複郭城): 한 겹의 성벽이 둘러쳐진 단곽성(單郭城)과 달리 이중(二重) 이상의 여러 겹으로 중첩되게 성벽을 마련한 성. 겹성이라고도 함
  • 편축성(片築城): 성벽의 안팎 면 모두 돌로 쌓는 협축성(夾築城)과 달리 경사지대를 이용해 성벽의 바깥면만 돌로 쌓은 성
  • 회곽도(回郭道): 병력이나 병장기를 운반하기 위해 성벽 안쪽을 따라 평평하게 낸 길. 내환도(內環道)라고도 함
  • 암문(暗門): 외부의 적이 찾기 어려운 곳에 만든 비밀 출입시설
  • 수구(水口): 성 안의 물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성벽을 관통하여 만든 배수시설

영문

  • Yongsansanseong Fortress

2019

This mountain fortress surrounds the peak of Yongsan Mountain (435 m above sea level). The steep sections of the fortress walls in the north and west are made primarily with earth and some stone, while the relatively flat sections in the south and east are entirely made with stone. The remains of four gates, one in each direction, and two wells were found in the fortress. One of the wells, called the Rainbow Well, still produces water. It is said that the local people held a ritual at this well during times of drought to wish for rain.

Based on ceramics and roof tiles discovered in the premises of the fortress, the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first been built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1st century CE-7th century CE). There is also a story in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that Kim In-mun (629-694), the son of King Muyeol (r. 654-661) of the Silla kingdom, once built a mountain fortress in 656 when he was designated as the leader of this area. It is believed this may be that same fortress.

The remaining walls of the fortress are 1.48 km in perimeter and have a height of 1.5-2.5 m.

2026

영문 해설 내용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