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매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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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매광산
Ongmae Mine
대표명칭 옥매광산
영문명칭 Ongmae Mine



해설문

국문

옥매광산은 일본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가 1916년부터 1945년까지 명반석, 납석, 고령토 등 광물자원을 채굴했던 곳이다. 명반석은 알루미늄의 원료로, 일본으로 운송되어 태평양전쟁 때 비행기 제조에 사용됐다.

현재 이곳에는 광물 창고 2곳과 다이너마이트 저장 창고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선창가에 있는 광물 창고는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산 중턱 창고에서 공중 선로로 광물을 운반해서 모았던 특수한 창고이다. 옥상 아랫부분 천장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은 광물을 분류해서 운반 레일에 싣기 쉽게 만든 것이다. 지금도 선착장으로 향하는 레일이 일부 남아 있다.

1945년 3월, 이 지역 광부 200여 명이 강제로 제주도 군사시설 건설에 동원됐다가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추자도 앞바다에서 100여 명이 수몰되었다. 옥매광산은 일제강점기 비운의 역사가 잘 남아 있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영문

Ongmae Mine

Ongmae Mine, located on Ongmaesan Mountain, produced alunite, kaolinite, and agalmatolite from 1916 to 1945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mine was operated by the Japanese company Asada Chemical Industry Co., Ltd. The alunite mined here was shipped to Japan to produce aluminum, which was used in aircraft manufacturing during the Pacific War (1941-1945).

The remaining structures include two warehouses for the mined products, a dynamite storage facility, and part of the railway leading to the wharf. The warehouses, in particular, remain in a nearly unchanged state. The railway was used to quickly deliver the mined products via rail car to the seashore where they would be loaded onto ships.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exploited the residents of the Jeolla-do region by forcibly mobilizing them to work at this mine. In March 1945, over 200 men who worked at this mine were taken to Jejudo Island where they were forced to build military fortifications for the war. After Korea’s liberation in August 1945, the workers attempted to return home via boat, but about 100 of them drowned after a fire broke out on the boat in the waters near Chujado Island.

영문 해설 내용

옥매산에 위치한 옥매광산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1945년까지 명반석, 납석, 고령토 등을 채굴하던 곳이다. 일본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가 운영했다. 명반석은 알루미늄의 원료로, 일본으로 운송되어 태평양전쟁 때 비행기 제조에 사용됐다.

현재 이곳에는 광물 창고 2곳, 다이너마이트 저장 창고, 선착장으로 향하는 레일 일부가 남아 있다. 특히 광물 창고는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레일은 산 정상에서 캐낸 광물을 철 수레에 실어 바닷가 선착장까지 쉽고 빠르게 내려보내기 위해 설치되었다.

일제는 전라도 지역 조선인들을 옥매광산에 강제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1945년 3월에는 옥매광산 노동자 200여 명을 강제로 제주도에 끌고 가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데 동원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배를 탔지만, 추자도 앞바다에서 배에 화재가 발생하여 100여 명이 수몰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