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관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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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Head House of Yi Won-ik’s Family and Gwangamdang Hall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영문명칭 Head House of Yi Won-ik’s Family and Gwangamdang Hall
한자 梧里 李元翼 宗宅 및 觀感堂
주소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347번길 5-6 (소하동)
지정번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지정일 1996년 12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관감당은 인조 9년(1631)에 청백리로 이름이 높던 오리 이원익에게 인조가 하사한 집이다.

인조는 이원익이 벼슬에서 물러나 비가 새는 초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기감사로 하여금 새 집을 지어주게 하고 ‘관감당(觀感堂)이라고 이름 짓도록 하였다.

관감당은 신하와 백성 모두가 이원익의 청렴한 삶을 ‘보고 느끼게 한다’라는 뜻이다.

현재의 관감당은 병자호란 때 훼손되어서 191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뒤쪽 칸에는 책 등을 보관하던 창고와 벽장을 두었다. 건물 앞에는 이원익이 생전에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알려진 ‘탄금암(彈琴岩)’이라는 바위가 남아 있다.

영문

Gwangamdang Hall

This is the men’s quarters of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of Yi Won-ik (1547-1634), a renowned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Won-ik served as chief state councilor – the highest government post – during the reigns of three kings and was bestowed the honorable title of Pure and Untarnished Official (Cheongbaengni). In 1631, King Injo (r. 1623-1649), the last king whom Yi served, was told that in his retirement, Yi was living in a thatched-roof house with many leaks. So, the king ordered the governor of Gyeonggi-do Province to have a new house built for Yi. The king named the house Gwangamdang, meaning “hall of seeing and feeling,” with the wish that all of his subjects could experience first-hand the upright life which Yi led.

The building was destroyed during the Manchu invasions of 1637 and was newly built in 1916. The building ha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with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ither side. In the back, there is a storage room where books were kept and a small closet. In front of the house there is a rock, where it is said that Yi would play his zither (geomungo).

영문 해설 내용

관감당은 조선시대의 명신인 이원익(1547-1634) 가문의 종택 사랑채이다.

이원익은 세 임금 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1631년 인조(재위 1623-1649)는 이원익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비가 새는 초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기도 관찰사로 하여금 새 집을 지어주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이원익의 청렴한 삶을 ‘보고 느끼게 한다’는 뜻에서 ‘관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관감당은 병자호란 때 훼손되어 1916년에 다시 지었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뒤쪽에는 책 등을 보관하던 창고와 벽장을 두었다. 건물 앞에는 이원익이 생전에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알려진 바위가 남아 있다.

참고자료

  •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경기문화재총람』 2, 2017, 454~455쪽.
  •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광명의 문화유산』, 광명시문화관광과, 2013, 92~94쪽.
  • 오리이원익종택및관감당,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1009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