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 백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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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백흥암
Baekheungam Hermitage of Eunhaesa Temple, Yeongcheon
영천은해사백흥암극락전.jpg
대표명칭 영천 은해사 백흥암
영문명칭 Baekheungam Hermitage of Eunhaesa Temple, Yeongcheon
한자 永川 銀海寺 百興庵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49



해설문

국문

영천 은해사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 혜철 국사의 발원(發願)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은해사에 소속된 작은 절이지만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별개의 사찰로 산 주변에 잣나무가 무성하여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 하였다.

조선 시대 중기인 중종 15년(1520) 팔공산에 인종의 태(胎)를 보관하면서 백지사는 중요한 것을 지키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막중수호지소(莫重守護之所)’로 지정되어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크게 번성하였다.

명종 1년(1546)에는 천교대사가 낡은 건물들을 새로이 고쳐 지으며 이름을 백흥암으로 바꾸었다.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기세와 같아 운부암(雲浮庵)에서 일어나는 상서로운 구름이 더욱 치솟아 용의 승천을 돕는다는 뜻에서 ‘백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크게 훼손되었으나 인조 21년(1643)부터 여러 차례 수리하거나 다시 지었다. 주요 전각으로는 극락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 심검당, 보화루 등이 있으며 극락전 내 수미단은 보물 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문

Baekheungam Hermitage of Eunhaesa Temple, Yeongcheon

Baekheungam Hermitage was originally built in 873 as an independent Buddhist temple called Baekjisa Temple.

In 1521, when a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r. 1544-1545), the 12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constructed about 1 km to the west, Baekjisa Temple was designated as a temple protecting the placenta chamber and received state funding. In 1546, when the old buildings of the temple were reconstructed, its name was changed to Baekheungam Hermitage.

The hermitage was significantly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since then underwent several repairs and reconstructions. Major buildings of the hermitage include Geungnakjeon Hall (Treasure No. 790), Myeongbujeon Hall, Yeongsanjeon Hall, Sansingak Shrine, Simgeomdang Hall, and Bohwaru Pavilion.

영문 해설 내용

백흥암은 873년에 백지사라는 사찰로 창건되었다.

1521년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조선 12대 왕 인종(재위 1544-1545)의 태실이 조성되면서, 백지사는 태실 수호사찰로 지정되었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크게 번성하였다. 1546년 낡은 건물들도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백흥암으로 바꾸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크게 훼손되었으나 그 이후 여러 차례 수리하거나 다시 지었다. 주요 전각으로는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비롯하여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 심검당, 보화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