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석포리 야일당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주 석포리 야일당
Yaildang Pavilion in Seokpo-ri, Yeongju
영주 석포리 야일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석포리 야일당
영문명칭 Yaildang Pavilion in Seokpo-ri, Yeongju
한자 榮州 石浦里 野逸堂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654번길 1-47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10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영주 석포리 야일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9

야일당은 조선 시대인 17세기 중엽에 김란이 건립한 정자이다. 야일당 김란은 병자호란의 굴욕을 참지 못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동포 마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야일당’이라는 이름은 산과 들에 숨은 백성이라는 ‘산야일민(山野逸民)’의 뜻이라고 한다.

야일당은 앞면 3칸, 옆면 1칸 반 크기의 기와지붕 건물로 대청과 온돌방이 있다. 본채는 중앙에 안마당, 앞쪽에 ‘一’ 자 모양의 사랑채와 뒤쪽에 ‘ㄷ’ 자 모양의 안채로 구성된 평면 ‘ㅁ’ 자 모양의 기와지붕 집이다. 사랑채에는 사랑방, 사랑마루,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마구간을 두었는데, 근래에 마구간을 방으로 고쳤다. 안채에는 안사랑방, 마루, 안방, 부엌이 있다. 안사랑방과 부엌 앞에는 제사 때 사용하는 빈소방, 새신부가 머무는 새방, 물건과 살림살이를 넣어 두는 곳간과 고방이 있다.

이후 수해로 무너져서 현재 위치로 옮겨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 야일당과 오른쪽에 나란히 있는 야일당보다 조금 늦게 지은 살림집인 본채는 조선 후기의 정자와 살림집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2025

영주 석포리 야일당은 김륵의 손자이자 김지선의 넷째 아들인 야일당 김란(野逸堂 金鑾)이 분가한 후 지은 건물이다. 야일당 정자와 정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동포 마을**에 있는 천운정 가까이에 있었으나, 폭우에 무너져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증손인 김휴열과 7대손인 김낙진이 고쳐 지었다. 영주댐의 건설로 인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2024년에는 앞선 위치보다 2m 정도 흙을 높게 쌓아 땅을 정리한 후, 낮은 지대에 있던 야일당과 정침을 해체하고 복원하였다.

야일당은 정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로 지은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평면으로 보면 왼쪽에는 대청 1칸이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 2칸이 나란히 있다.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으며, 별도의 사당을 세우지 않고 대청*** 위쪽에 감실****을 만들어 두었다.

정침은 정면 5칸, 옆면 5칸 반 규모이며, 야일당의 오른쪽에 ‘ㅁ’ 자 모양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야일당에 비해 건물을 만든 시기가 다소 늦은 것으로 보인다.

야일당은 17세기 중엽에 고쳐 지은 건물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당시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정침(正寢): 전통 한옥 공간 구성에서 중심이 되는 주된 거처
  • 동포 마을(東浦마을): 영주시 이산면 석포 1리 번계 마을과 그 주변 내성천을 포함하는 곳.
  • 대청(大廳):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 감실(龕室): 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가구나 작은 공간.

영문

Yaildang Pavilion in Seokpo-ri, Yeongju

2019

This pavilion was built in the mid-17th century by Kim Ran (pen name: Yaildang).

When Korea surrendered to Qing China as a result of the Manchu invasion of 1637, Kim became distraught and therefore cut ties with the world and secluded himself in this village where he built the pavilion. He named the pavilion Yaildang, meaning "the place of the man hidden in the countryside." Later, the pavilion collapsed due to a flood and was repaired.

The building features a gable roof and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o the left and two underfloor-heated rooms in the middle and to the right.

Next to the pavilion is a residential house,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after the pavilion. It consists of a men’s quarters in the front and a women’s quarters in the back which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2025

The Yaildang Pavilion complex, consisting of a pavilion and an auxiliary quarters, was established in the mid-17th century by Kim Ran (pen name: Yaildang) when he moved out of his family house. Originally located in Dongpo Village, the buildings reportedly collapsed due to heavy rain and were rebuilt at the current location. The complex was renovated by Kim Ran’s great-grandson Kim Hyu-yeol and later his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Kim Nak-jin. In 2024, the buildings were dismantled and renovated while the ground level was raised 2 m to mitigate the flood damage risk posed by Yeongju Dam, which opened in 2016.

The pavilion retains the architectural features of the mid-17th century. The building features a tiled gable roof and measures three bays in width by one bay in depth.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o the left, underfloor-heated rooms to the right, and a narrow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The wooden-floored hall has a niche shrine for housing ancestral spirit tablets.

The auxiliary quarters, located to the right of the pavilion, measures five bays in width by five bays in depth.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somewhat later than the pavilion.

영문 해설 내용

2019

이 정자는 17세기 중엽 김란(호: 야일당)이 세웠다.

김란은 1637년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항복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이 마을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산과 들에 숨은 백성’이라는 뜻의 자신의 호를 따서 정자의 이름을 지었다. 이후 수해로 무너져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정자는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왼쪽에 대청을 두고 가운데와 오른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정자 옆에는 정자보다 조금 늦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살림집이 있다. 앞쪽의 사랑채와 뒤쪽의 안채가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2025

야일당은 정자와 정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세기 중엽에 김란(호: 야일당)이 분가하면서 지었다. 원래 동포마을에 있었으나, 폭우에 무너져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김란의 증손인 김휴열과 7대손인 김낙진이 고쳐 지었다. 2016년 영주댐이 완공된 후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24년 원래 위치보다 2m 정도 흙을 높게 쌓아 올린 후 정침과 정자를 해체 복원하였다.

정자는 17세기 중엽의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정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로 지은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왼쪽에는 대청 1칸이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 2칸이 나란히 있다.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으며, 대청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한 감실을 만들어 두었다.

정자 오른쪽에 있는 정침은 정면 5칸, 옆면 5칸 반 규모이다. 정자에 비해 건물을 만든 시기가 다소 늦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