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이휘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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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조 묘
Tomb of Yi Hwi-jo
대표명칭 이휘조 묘
영문명칭 Tomb of Yi Hwi-jo
한자 李徽祚 墓
주소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내룡리 산9-1
지정번호 여주시 향토문화유산



해설문

국문

이휘조(자는 자미, 본관은 한산, 1603~1681)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목은 이색의 후손이며, 부는 이조판서 이현영(李顯英)이다. 그리고 명성황후(明成皇后)의 7대 외조부이기 하다. 1637년 병자호란 직후 재상의 자제를 볼모로 보내야 한다는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이조판서의 아들로 심양에 끌려갔다 7년 만에 귀국 하였다. 1645년 장원서주부가 되고, 1664년(현종 5) 이천부사를 비롯하여 영천 군수, 파주 목사 등 여러 고을을 다스렸다.

묘는 이휘조와 부인 광주이씨의 합장묘이다.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이 있으며, 봉분에는 원형의 호석이 둘러져 있다. 입구의 묘갈은 숙종12년(1686)에 건립된 것으로 갈제(碣題)는 이조참판인 박세체가 지었으며 글씨는 당대의 명필인 남구만(南九萬)이 썼고, 비신 상단의 전액은 신익상(申翼相)이 올렸다.

이휘조 묘소 아래에는 손자 군자감판관 이명항(李明恒)의 묘가 있다.

영문

Tomb of Yi Hwi-jo

This is the tomb of the civil official Yi Hwi-jo (1603-1681) and his wife Lady Yi.

Born into the Hansan Yi clan, Yi Hwi-jo was a descendant of the revered scholar and politician Yi Saek (1328-1396) and a son of the minister of personnel Yi Hyeon-yeong (1573-1642). Follow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Yi was sent to the Qing capital (today’s Shenyang, China) upon Qing’s request that the children of Korea’s high-ranking officials be sent as hostages. He returned home after seven years and later went on to serve in various official posts, such as the magistrate of Icheon, Yeongcheon, and Paju.

The tomb consists of an earthen burial mound surrounded at the base by stones.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are various stone sculptures, including a spirit seat, a table, an incense table, pillars, and a tombstone erected in 1686. The tombstone’s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vice minister of personnel Bak Se-chae (1631-1695) and calligraphed by the renowned calligrapher Nam Gu-man (1629-1711), while the tombstone’s name was calligraphed by the inspector-general Sin Ik-sang (1634-1697).

In front of Yi Hwi-jo’s tomb is the tomb of his grandson, Yi Myeong-hang.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이휘조(1603-1681)와 부인 광주이씨의 합장묘이다.

이휘조는 한산이씨로 고려 때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색(1328-1396)의 후손이고 이조판서 이현영(1573-1642)의 아들이다. 이휘조는 병자호란 직후 재상의 자제를 볼모로 보내야 한다는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청나라 수도인 심양에 끌려갔다. 7년 만에 귀국한 이후 이천부사, 영천군수, 파주목사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봉분에는 원형의 호석이 둘러져 있고,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1686년에 세워진 묘비 등의 석물이 있다. 묘비의 비문은 이조참판인 박세채(1631-1695)가 지었었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인 남구만(1629-1711)이 썼으며, 몸돌 위쪽에 적힌 묘비의 이름은 대사헌 신익상(1634-1697)이 썼다.

이휘조의 묘 앞에는 손자 이명항의 묘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