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보통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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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보통리 고택
Historic House of Botong-ri, Yeoju
“여주 보통리 고택”, 『경기도문화재총람 국가지정편 1』, 경기도, 경기도문화재연구원, 2019, 512쪽.
대표명칭 여주 보통리 고택
영문명칭 Historic House of Botong-ri, Yeoju
한자 驪州 甫通里 古宅
주소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보통1길 98 (보통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26호
지정일 1984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필지/2,588㎡
웹사이트 여주 보통리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여주 대신면 보통리에 대대로 살아온 창녕 조씨 하산군파의 고택이다. 상량문과 문중 기록 및 건축 기법을 통해 볼 때 조선 순조 13년(1813)에 이조판서를 지낸 조윤대와 그의 아들인 조봉진, 조용진이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이 집은 또한 독립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고택으로 조석우의 고손인 독립운동가 조성환과 춘천 의병 의병장인 이만응이 거주하였던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건물의 배치는 ㄷ자형 안채 앞에 ㅡ자형 큰 사랑채가 놓인 ㅁ자형 배치이다. 이러한 배치는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보이지만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평면 구성에서도 안방과 대청이 중앙에 나란히 놓이는 경우는 드물며 작은 사랑채를 별도로 두는 일도 흔한 일은 아니다. 부엌이 크고 본채에 좌우 날개채가 달린 이러한 구성은 살림의 규모가 매우 컸던 집임을 보여준다.

큰 사랑채 앞쪽으로는 행랑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행랑에 대문이 있었는지 아니면 대문간이 별도로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건물의 규모는 큰 편이지만 부재의 사용이 과하지 않고 기법은 소박하지만 부족함이 없어서 세련된 멋이 있는 집이다.


  • 대문간 : 대문을 여닫기 위해 대문 안쪽에 있는 빈 곳.
  • 건립연대 수정 필요. 경기도문화재총람(2019)에 따르면 상량문을 통해 1753년에 건립된 것이 확인되었음.
    • 시청 문의 결과, 1753년, 1813년 모두 추정치이나, 연구결과에 따라 1813년에 좀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임.

영문

Historic House of Botong-ri, Yeoju

This is a house of the Hasangun Branch of the Changnyeong Jo Clan.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1813.

Ever since Jo Gyeong-in moved to Botong-ri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descendants of the Changnyeong Jo Clan have lived in this village. Jo Seong-hwan (1875-1948), an independence activist and member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was born in this house. His father Jo Byeong-hui sold the house to raise money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new owner was a cousin of the civilian army commander Yi Man-eung (1857-1938). Yi himself spent his last years here.

The house consists of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secondary men's quarters, and a storehouse. There was also a servant’s quarters in front of the men’s quarters, but it no longer remains. The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nd secondary men's quarters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 kitchen i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women's quarters and is large compared to the house's overall size, which suggests this house received many guests. In front of the men’s quarters is a sundial, designated as Gyeonggi-do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2.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창녕조씨 하산군파의 고택으로 1813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조경인이 보통리로 들어오면서 창녕조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 마을에 거주하였다. 이 집에서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이었던 조성환(1875-1948)이 태어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조병희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매각하였으며, 이것을 여주 출신의 의병장 이만응(1857-1938)의 사촌이 인수하게 되면서 이만응도 이 집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 집은 안채, 사랑채, 작은사랑채, 광채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사랑채 앞에 행랑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사랑채와 안채, 작은 사랑채가 중앙에 마당을 두고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부엌이 안채 중앙에 배치되어 있고 가옥의 규모에 비해 큰 것으로 보아, 살림의 규모가 매우 컸던 집임을 알 수 있다. 사랑채 앞에는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해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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