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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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Yeomhaengdang House in Hahoe, Andong
"염행당", 안동하회마을.
대표명칭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영문명칭 Yeomhaengdang House in Hahoe, Andong
한자 安東 河回마을 念行堂 古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남촌길 60-5 (하회리)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
지정(등록)일 1979년 1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필지/2,341㎡
웹사이트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염행당은 류치목 柳致睦 1771~1836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단출하게 지었는데, 그의 증손자인 류영우 柳永佑 1850~1934 가 1905년에 크게 확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4년에 불이 나서 안채, 사랑채와 후대에 지은 작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채와 별당, 사당만이 남아 있다. 별당채와 사당 사이의 흙돌담에 기와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넣어 고아한 정취를 풍긴다.

수정 국문 2020

염행당은 조선 후기 문신인 류치목(柳致睦, 1771~1836)이 1797년에 지은 집이다.

류치목이 지었던 본래의 집은 단출하였으나, 1905년에 그의 증손자인 류영우(柳永佑, 1850~1934)가 대문간채, 몸채, 사당, 별당, 정자 등으로 크게 확장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불이 나서 몸채와 정자가 타고 대문채와 별당, 사당만이 남아 있었는데, 정자는 복원하였으나 몸채가 없어 현재는 별당채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별당채의 벽 아래쪽에는 기와 조각으로 기쁨과 장수를 바라는 글자를 넣었다. 또 별채와 사당 사이의 흙돌담에도 기와 조각으로 무늬를 넣어 장식하였다.

하회마을은 마을 중심의 길을 두고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는데, 이 집은 충효당과 함께 남촌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남촌 중심에 자리하여 남촌댁으로 불린다.

영문

Yeomhaengdang House in Hahoe, Andong

This house was built in 1797 by Ryu Chi-mok (1771-183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Ryu Chi-mok is the eighth-generation descendant of renowned civil official Ryu Seong-ryong (1542-1607).

When it was first built, it was originally modest in size. But when his great-grandson Ryu Yeong-u (1850-1934) conducted a large-scale expansion in 1905, it became a proper aristocratic residence. However, in 1953, there was a fire, after which only the gate quarters, detached quarters, and shrine remained.

The wall of the detached quarters features a section decorated with two Chinese characters, meaning “double happiness” and “longevity.” The earthen-wall between the detached quarters and the shrine is decorated with an ornamental design using roof tiles.

Yeomhaengdang, along with Chunghyodang House, is one of the two most well-known properties houses in the southern part of Hahoe Village. It is also known by its nickname, Namchondaek, which means “house of the South Village.”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류치목이 1797년에 지었다. 류치목은 류성룡의 8대손이다.

류치목이 지었던 본래의 집은 단출하였으나, 1905년에 그의 증손자인 류영우(柳永佑, 1850~1934)가 크게 확장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불이 나서 대문채와 별당, 사당만이 남았다.

별당채의 벽 아래쪽에는 기와 조각으로 기쁨과 장수를 바라는 글자를 넣었다. 또 별채와 사당 사이의 흙돌담에도 기와 조각으로 무늬를 넣어 장식하였다.

염행당은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 남촌을 대표하는 건물이며, 남촌댁으로도 불린다.

참고

관련 인물 및 창건 관련 정보 비교

출처 창건시기 관련인물 파괴 복원 구성 비고
국가문화유산포털 1797 형조좌랑 류기영(1824~1880)이 지음 1953 화재 2010 몸채 복원 대문채, 몸채, 정자, 사당채, 별당채 2011년인듯 (관련 기사)
민백 조선 후기 주일대사 류태하(1909~1981)의 고택 1953 화재 대문간채, 몸채, 사당, 별당, 정자 "정자는 복원하였으나, 몸채가 없어 현재는 별당채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 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몸채가 복원되었음.
향문 1797 류기영의 조부인 류치목(1771~1836)이 건립. 형조좌랑 류기영(1825~1880)의 가옥. 1953 화재 대문간채, 몸채, 사당, 별당, 정자 "지금은 별당채를 주생활 공간으로 쓰고 있고, 정자는 복원하였다." --> 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몸채가 복원되었음.
  • 이 집은 애운 류치목(1776~1836)이 현 위치로 분가해 나오면서 비롯하였다. 류치목은 서애의 장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의 6대손으로, 1814년 식년 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대사간, 승정원 우승지,춘추관 수찬관 등 벼슬을 하였다. 원래 단출한 가옥이었으나 류치목의 손자인 류기영(1824~1880)에 의해 1878년 확장되고, 증손자인 류영우(1850-1934)에 의해 1905년에 크게 확장되었다. 염행당을 안내하는 자료나 안내문에 "남촌댁은 형조좌랑을 지낸 류기영이 1797년에 건립"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은 잘못된 내용이다.
    • 이상해, 『전통 역사마을 하회』, 문화재청, 2008, 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