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진성이씨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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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종택
Head House of the Jinseong Yi Clan, Andong
안동 진성이씨 종택, 『2022년 국가민속문화재(건조물) 정기조사 연구보고서 III』, 문화재청, 2022, 390쪽.
대표명칭 안동 진성이씨 종택
영문명칭 Head House of the Jinseong Yi Clan, Andong
한자 安東 眞城李氏 宗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태리금산로 242-5 (주하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91호
지정일 2017년 6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건물 6동, 토지 2,329.73㎡<2필지>)
웹사이트 안동 진성이씨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7

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택(大宗宅)으로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자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1361) 홍건적의 난에 공을 세워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어 송안군에 봉해졌으며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역임하였다.

금학산 (琴鶴山) 기슭에 낮게 깃들인 남향집으로 본채는 정면 9칸, 측면 7칸이고, 정침 외에 별당, 사당,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口’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에는 ‘고송류수각(古松流水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별당인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 지역 사대부가의 면모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 건물이다. 당호인 경류정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지었다고 한다.

2023

이 건물은 진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종가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14세기에 안동 지역에 정착한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脩)가 지었다고 전하며, 이자수의 7대손인 이훈(李壎)이 크게 손보고 고쳤다.

이자수는 진성 이씨의 시조 이석의 아들로서, 고려 시대의 문신이다. 충숙왕 17년(1330)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고,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원래 진보(지금의 청송 지역)에서 살았으나, 마라촌(지금의 안동 풍산읍 마애리)에 정착하였다가 만년에 주촌(지금의 와룡면 주하리)으로 이주하였다.

이 종택은 본채와 별당, 그리고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생활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본채 뒤편에 있는 사당은 내삼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여서 독립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종택의 구조는 조선 시대 경상도 지역 사대부 주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본채 왼쪽에 있는 별당은 이자수의 6대손인 이연(李演)이 성종 23년(1492)에 지었다고 한다. 별당의 이름인 ‘경류정(慶流亭)’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지었다. 별당 앞마당에는 나이가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뚝향나무(천연기념물)가 있어서 이 종택이 유서 깊은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 행랑채(行廊채): 대문간 곁에 있는 집채. 보통 하인들이 살거나 곡식을 저장해 두는 창고로 쓰였다.

영문

Head House of the Jinseong Yi Clan, Andong

2017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Jinseong Yi Clan.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The exact construction period of this house is unknown, and it is said to have been constructed by Yi Ja-su, a meritorious subject who made distinguished contributions in suppressing the Red Turbans in the late 14th century.

This head house consists of a main quarters, a detached house, a shrine, and a servants’ quarters. The detached house was named “Gyeongnyujeong” by Yi Hwang (1501-1570), one of the most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ut later the entire head house came to be referred to by this name.

2023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This head house is said to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14th century by Yi Ja-su, the first person of the Jinseong Yi clan to settle in the Andong area. The house later underwent a major renovation by Yi Ja-su’s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Yi Hun (1467-1538).

Yi Ja-su was the son of Yi Seok, the founder of the Jinseong Yi clan, and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30 and served in various official posts. In 1361,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his contribution in the defeat of the Red Turban invasion. Originally from Jinbo (today’s Cheongsong), Yi settled in Marachon Village (today’s Maae-ri, Pungsan-eup, Andong) and moved to Juchon Village (today’s Juha-ri, Waryong-myeon) in his later years.

The head house consists of a main quarters, a detached quarters, a shrine, a servants’ quarters, and a mill. The main quarters comprise a men’s quarters and a women’s quarters that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se separate living spaces for men and women follow the Confucian tradition of separation of the sexes. The shrine, located behind the main quarters, is surrounded by its own enclosure wall and is accessed via an inner gate. Overall, the house’s layout is typical of upper-class houses in the Gyeongsang-do regio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o the left of the main quarters is the detached quarters, named Gyeongnyujeong Pavilion, which is said to have been built in 1492 by Yi Yeon, the sixth-generation descendant of Yi Ja-su. The name Gyeongnyujeong was given by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In front of the detached quarters is a horizontal Chinese juniper tree (Natural Monument) presumed to be about 600 years old, attesting to the history of this head house.

영문 해설 내용

2023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이 종택은 진성이씨 중 가장 먼저 안동 지역에 정착한 이자수가 14세기에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이자수의 7대손인 이훈(1467-1538)이 크게 고쳐 지었다.

이자수는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의 아들이고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1330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원래 진보(지금의 청송 지역)에 살았는데, 마라촌(지금의 안동 풍산읍 마애리)에 정착하였다가 만년에 주촌(지금의 와룡면 주하리)로 이주하였다.

이 종택은 본채, 별당,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생활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본채 뒤편에 있는 사당은 내삼문이 있는 담장을 둘러싸여 독립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종택의 구조는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 사대부 주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본채 왼쪽에 있는 별당 경류정은 이자수의 6대손인 이연이 1492년에 지었다고 한다. 별당의 이름은 대학자인 이황(1501-1570)이 지었다. 별당 앞마당에는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뚝향나무(천연기념물)가 있어 이 종택의 역사를 보여준다.

갤러리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