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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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Ginkgo Tree of Yonggye-ri, Andong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영문명칭 Ginkgo Tree of Yonggye-ri, Andong
한자 安東 龍溪里 銀杏나무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175호
지정일 1966년 1월 13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기념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용계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700년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나무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1990년 11월부터 1993년 7월까지 원래 나무가 있던 자리에 15m 높이로 흙을 쌓아 올리고 다시 심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였으나, 다시 심는 과정에서 가지가 잘려서 원래의 규모를 잃었다. 나무의 높이는 31m, 가슴높이 둘레는 13.7m,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의 폭은 동서 방향이 26.9m, 남북 방향이 27.3m이다.

이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며,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울음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선조(1576~1608 재위) 때 안동 출신의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임진왜란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계(契)를 만들고 나무 밑에 모여 친목을 다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문

Ginkgo Tree of Yonggye-ri, Andong

The ginkgo (Ginkgo biloba L.) is a tree species considered to be a living fossil because it has existed for 270 million years. As its foliage creates a wide shaded area, the ginkgo is typically planted along the road and at village entrances.

This ginkgo tree in Yonggye-ri is presumed to be over 700 years old. The tree was in danger of being submerged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Imha Dam, so from November 1990 to July 1993, the tree was temporarily removed, and the spot where the tree stood was artificially raised in height by 15 m before the tree was replanted. The tree had been the widest ginkgo in Korea, but it lost its original size when most of its branches were trimmed back during the replanting process. Its height measures 31 m, its circumference at chest level measures 13.7 m, and the width of its canopy measures 26.9 m by 27.3 m.

This tree has long been respected as a guardian tree that protects the village, so it is believed to make crying sounds that foretell a bad omen for the country. It is said that after the army training commander Tak Sun-chang returned to his hometown of Andong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established a mutual assistance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this tree, which served as a venue for their meetings.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용계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700년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나무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1990년 11월부터 1993년 7월까지 원래 나무가 있던 자리에 흙을 15m 높이로 쌓아 올리고 다시 심었다. 한국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였으나, 다시 심는 과정에서 가지 대부분이 잘려서 원래의 규모를 잃었다. 나무의 높이는 31m, 가슴높이 둘레는 13.7m, 수관의 폭은 동서방향이 26.9m, 남북방향이 27.3m이다.

이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며,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울음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안동 출신의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은 임진왜란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계(契)를 만들고 나무 밑에 모여 친목을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안동_용계리_은행나무 Object 안동_용계리_은행나무
은행나무 Concept 은행나무
탁순창 Actor 탁순창(卓順昌)
임하댐_건설 Event 임하댐_건설(1987)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안동_용계리_은행나무 탁순창 isRelatedTo
은행나무 안동_용계리_은행나무 type
안동_용계리_은행나무 임하댐_건설 isRelatedTo

참고자료

  •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문화재대관 천연기념물·명승[식물] II』, 문화재청, 2009, 86~87쪽.
  •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63701750000
  • [한국의 명목]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15m 들어올렸는데 은행 알 주저리주저리 달려, 조선일보 山, 2013.7.12.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9/2013070902721.html →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700년 된 은행나무(높이 37m, 가슴둘레 14.5m, 수간 폭 33m)가 임하댐 건설로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 신목(神木)으로 숭상되어 오던 은행나무를 살리려는 이 지역 주민들의 구명운동은 10여 년간이나 이어지고 그 노력의 결과로 600여 톤 이상 되는 거목의 뿌리와 원목을 15m 위로 어렵게 들어 올렸다. / 다행스럽게도 4년여 공사 끝에 1994년 10월 8일, 마침내 순조로이 상식 공사를 마쳤고 생육상태 또한 좋아서 기대 이상으로 은행 알이 주저리주저리 열렸다. 이를 수확해서 싹을 틔운 다음 2006년부터 2세(世)목(木) 3,000여 본을 각 기관, 단체, 시민과 전국으로 분양했다. / 안동시에서는 이 은행나무 주변을 기점으로 용계골과 전 시가지 가로변에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은행나무 10만 본을 심었다. 그 후 2009년 10월 29일 은행나무 상식 전 과정을 소개한 전시관 개관과 주변 순환도로 개통식(L=9.5km)과 더불어 늦은 가을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잎을 밟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용계리 은행나무 추수감사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 수장될 뻔한 국내 최대(最大) 길안 용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시니어매일, 2020.10.7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766 → 탁순창이 은행나무 계(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던 그때 이미 300살이 넘었던 이 나무는 여느 나무와 다른 신목(神木)으로 길러지면서 추앙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뒷산인 약산봉수대를 지키던 봉수꾼 여남은 명이 왜병에게 쫓기어 마을로 내려와 이 나무에 올라 숨었다. 뒤쫓아 온 왜병은 숨은 봉수꾼을 보지 못하고 나무그늘에서 쉬었다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 은행나무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국치(國恥)를 못내 서러워하여 울었고, 6.25한국전쟁 때도 울었다고 전한다. / 원래 은행나무는 암수가 서로 마주 보아야만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용계리에는 수나무가 없다. 그런데 암나무만으로 한 해 은행을 서른 말가량 수확하였다 한다. 이는 나무 아래 맑은 냇물이 있어 그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수나무로 착각하여 결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