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예산리 배리댁
성주 예산리 배리댁 Baeridaek House in Yesan-ri, S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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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주 예산리 배리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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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aeridaek House in Yesan-ri, Seongju |
한자 | 星州 禮山里 裵里宅 |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예산3길 22 (예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등록)일 | 2006년 9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1936 |
수량/면적 | 1곽/903㎡ |
웹사이트 | 성주 예산리 배리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성주 예산리 배리댁은 1936년에 도문환(都文煥)이 세운 살림집으로, 결혼한 아들 도재림(都在琳) 내외를 분가시켜 살게 하려고 지었다. 가옥의 이름은 도재림의 부인이 배리 마을에서 시집온 데서 유래한다. 이 집을 세운 도문환은 성주 출신의 애국 계몽운동*가인 도갑모(都甲模)의 아들로, 도문환 역시 1920년대 성주 지역의 청년 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여러 사회 운동을 하였던 인물이다. 배리댁의 서측에는 배리댁을 세운 도문환이 실제로 살았던 만산댁이 있다.
성주 예산리 배리댁은 한옥과 일본식 전통 가옥이 절충된 근대 가옥이므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외관은 한옥이지만, 평면 구조와 창호***, 실내장식 등에서 2층인 일본 가옥의 특징을 보여 준다. 현재의 가옥은 대문채와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나 행랑채와 창고가 함께 있었다고 하며, 안채 앞쪽의 넓은 빈터가 두 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 애국계몽운동: 일본의 침략에 맞서 1905~1910년 사이에 일어난 국권 회복 운동과 대중 계몽 운동
- 신간회: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힘을 모아 만든 대표적인 항일 단체
- 창호: 창과 문
영문
Baeridaek House in Yesan-ri, Seongju
This house was built in 1936 by Do Mun-hwan for his son Do Jae-rim and daughter-in-law to reside after moving out of the family house. The house’s name comes from the daughter-in-law’s hometown, Baeri Village.
Do Mun-hwan was the son of Do Gap-mo, a prominent leader in the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in Seongju. In the 1920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he participated in the local youth and independence movements. The house where Do Mun-hwan once lived, Mansandaek House, is located to the west of this house.
This house incorporates elements of both Korean and Japanese traditional houses, making it valuable in the study of Korean residential history. The exterior follows a Korean style, while the floor plan, windows, and interior ornamentations follow a Japanese style. The complex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nd an L-shaped women’s quarters, but it is said that there were once also a servants’ quarters and a storehouse situated on the now empty land in front of the women’s quarters.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1936년 도문환이 아들 도재림 내외를 분가시켜 살게 하려고 지었다. 가옥의 이름은 며느리가 배리 마을 출신인 데에서 유래하였다.
도문환은 성주 출신의 애국 계몽운동가인 도갑모의 아들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성주 지역의 청년 운동과 항일 운동 등을 하였다. 이 집의 서쪽에는 도문환이 살던 집인 만산댁이 있다.
이 집은 한옥과 일본식 전통 가옥이 절충된 가옥으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외관은 한옥이지만, 평면 구조, 창호, 실내장식 등에서 일본 가옥의 특징을 보여 준다. 현재의 가옥은 대문채와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나, 원래는 안채 앞쪽의 넓은 빈터에 행랑채와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