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산동 고분군 - 제50호분(옛 59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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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호분(옛 59호분)
Tomb No. 50 (Formerly Tomb No. 59)
Goto.png 종합안내판: 성주 성산동 고분군



해설문

국문

제50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17.9m, 높이 1.9m이다. 1987년에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 중앙에 무덤 주인이 있는 돌방이 있고, 돌방의 남쪽에 딸린덧널 2기가 나란히 있다. 돌방 동쪽에는 덧널을 이루는 돌 일부가 사라져 사람의 출입이 가능했다. 평소에는 소나기를 피하는 장소나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등 유사시에는 피난처로 이용되어 근처의 주민들은 이 무덤을 방공호라고 불렀다.

이 무덤에서는 그릇받침, 큰 항아리, 신선로 모양 토기, 화살통, 쇠창, 말갖춤 등의 유물이 나왔는데, 돌방 안에서 나온 유물 중 쇠칼이나 쇠창의 끝부분이 동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 주인의 머리는 서쪽 방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기의 딸린덧널에는 각각 한쪽 모서리에 빈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순장된 사람이 묻혔을 것으로 보인다.

영문

Ancient Tombs in Seongsan-dong, Seongju - Tomb No. 50 (Formerly Tomb No. 59)

Tomb No. 50 is a stone chamber pit tomb. Its earthen burial mound measures 17.9 m in diameter and 1.9 m in height. The excavation of the tomb was conducted in 1987 by the Keimyung University Museum.

The tomb consists of a main burial chamber in the center and two auxiliary chambers located to the south. Each of the auxiliary chambers has an empty space in one corner, where it is presumed that a human sacrifice was buried.

The artifacts discovered in the tomb include vessel stands, jars, hot pot-shaped earthenware, quivers, iron spears, and horse-riding accessories. The iron weaponry was placed pointing to the east, which suggests that the body would have been placed with its head turned to the west.

Part of the eastern wall of the burial chamber was fractured, allowing for people to enter inside. It is said that the tomb was used as a shelter to escape rain showers, as a children’s playground, or as a refuge during war or other crises, which is why the tomb was known among the locals as Banggongho, meaning “Air-raid Shelter.”

영문 해설 내용

제50호분은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봉분의 크기는 지름 17.9m, 높이 1.9m이다. 1987년에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 중앙에는 시신을 안치하는 돌방이 있고, 돌방 남쪽에 덧널 2기가 딸려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두 덧널 모두 한쪽 모서리에 빈 공간이 있으며, 이곳에 순장자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 안에서는 그릇받침, 항아리, 신선로 모양 토기, 화살통, 쇠창, 말갖춤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중 쇠로 된 무기류의 끝부분이 동쪽을 향하도록 놓인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머리를 서쪽으로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돌방 동쪽 덧널을 이루는 돌 일부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했다. 평소에는 소나기를 피하는 장소나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등 유사시에는 피난처로 이용되어 근처의 주민들은 이 무덤을 방공호라고 불렀다.

갤러리

참고자료

  • 지자체 1자 제공 자료
    • (발굴조사 : 1987. 1. 13 ~ 1987. 4. 23 계명대학교 박물관 / 무덤 크기 : 지름 17.9m, 높이 1.9m / 출토유물 : 그릇받침, 큰 항아리, 신선로 모양 토기, 화살통, 쇠창, 말갖춤 등)

삼국시대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室)이다. 무덤 중앙에 무덤 주인이 안치된 돌방이 위치하고 돌방의 남쪽으로 딸린덧널 2기가 나란히 있다. 돌방 동쪽에는 덧널을 이루는 돌 일부가 사라져 사람의 출입이 가능했다. 평소에는 농사짓다가 소나기를 피하거나 어린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등 유사시에는 피난처로 이용되어 인근 주민들은 이 무덤을 ‘방공호’라 불렀다.
돌방 안에서 출토된 유물 중 쇠칼이나 쇠창의 끝부분이 동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 주인의 머리 방향은 서쪽일 것으로 추정된다. 2기의 딸린덧널 각각은 한쪽 모서리에 빈 공간이 확인되었는데 이곳에 순장자가 묻혔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