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구병희 가옥
| 서천 구병희가옥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
|
| 대표명칭 | 서천 구병희가옥 |
|---|---|
| 영문명칭 |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
| 한자 | 舒川 丘秉喜家屋 |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로182번길 23-1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2019년 8월 20일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시대 | 일제강점기(안채 1918년, 사랑채 1933년) |
| 수량/면적 | 지정구역 2,035㎡ |
목차
해설문
국문
2020
구병희 가옥은 참봉 구병희(丘秉喜, 1886~1981)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과 1933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넓은 수왕들을 바라보며 ‘바위재’ 언덕 아래에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았지만 정자와 창고 등 더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구병희는 평해 구씨(平海 丘氏)로 고종 9년(1905)에 경기전* 참봉을 지냈다. 평해 구씨가 서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1500년대 초의 일이고, 그의 후손들은 문산, 시초, 마서 등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구병희는 ‘천석꾼’으로 불릴 만큼 큰 부자였는데, 생활이 어려운 시초면 사람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집의 안채는 1918년에, 사랑채는 1933년에 각각 지어졌다. 건물의 목재를 조립한 형태가 일반 민가에서 쓰지 않는 복잡한 7양가(樑架)** 방식인데다가 안채의 규모도 큰 편이어서 동헌*** 건물을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랑채는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
-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의 숫자가 일곱 개인 집.
- 조선 시대 고을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청 건물.
2026
서천 구병희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중부지역 양반가의 한옥 기와집이다. ‘바우재’ 언덕 아래에 넓은 수왕들을 바라보며 위치하고, 좌향(坐向)은 동남향이다. 안채 상량문의 1918년 기록과 사랑채 대청마루 상량문의 1933년 기록을 통해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았지만, 정자와 창고 등 네 채의 건물이 더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고, 사랑채 몸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 날개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 팔작지붕으로, 한식과 일식을 절충한 근대 가옥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채는 건물의 목재를 조립한 형태가 일반 민가에서 쓰지 않는 복잡한 7양가(樑架)*방식이다.
구병희(丘秉喜, 1886〜1981)의 본관은 평해(平海)로, 구용하(丘龍河)와 진주 김씨(晉州金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종 9년(1872)에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역임하였으며, 천석꾼의 부자로 1922년에는 시초공립보통학교 설립기금 1천원을 기부하고, 1925년도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빈민 4백여 가구의 세금을 대납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공로로 1925년에 면민들이 공덕비를 세웠으며, 1991년에는 한글 공덕비를 별도로 세웠다.
구병희 가옥은 건립연대가 확실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2019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서천군 문화유산 정비사업계획에 따라 2023년에 안채와 사랑채의 보수공사를 하였다.
- 7양가(樑架):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의 숫자가 7개인 집.
영문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2020
This house was built in 1918 and 1933 by Gu Byeong-hui (1886-1981) of the Pyeonghae Gu cl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Pyeonghae Gu clan has lived in the Seocheon area for many generations and formed more than ten clan villages since Gu Maeng-jeon moved here in the early 16th century.
Gu Byeong-hui was a very wealthy and generous man who helped poor people pay their taxes and founded educational facilities. In 1905, he was entrusted to administer Gyeonggijeon Shrine (Historic Site No. 339), which held a portrait of King Taejo (r. 1392-1398), the founding k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house faces southeast towards the wide Suwangdeul Field. The residence currently consists of only a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but it originally also had a pavilion, a warehouse, and other buildings. The women’s quarters, built in 1918, is quite large in size and features intricate wooden structures, which is uncommon for private residential buildings, and it is said that the building was made from the disassembled parts of a magistrate’s office. The men’s quarters was built in 1933 and combines traditional Korean and Japanese architectural design.
2026
영문 해설 내용
2020
이 집은 평해구씨 가문의 구병희(1886-1981)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과 1933년에 지은 집이다. 평해구씨는 16세기 초에 구맹전이 처음으로 서천 지역에 입향한 이후로 후손들이 대대로 살며 10여 개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구병희는 큰 부자였는데, 생활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05년에는 조선 태조(재위 1392-1398)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의 관리를 맡기도 하였다.
이 집은 넓은 수왕들을 바라보며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았지만, 원래는 정자와 창고 등 더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918년에 지어진 안채는 목재를 조립한 형태가 일반 민가에서는 쓰지 않는 복잡한 방식인데다가 규모도 큰 편이어서 동헌 건물을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랑채는 1933년에 지었으며,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