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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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Stele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경기문화재연구원.
대표명칭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영문명칭 Stele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한자 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
주소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지정(등록)일 1978년 10월 1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후기 승려 보우(普愚, 1301~1382) 스님의 업적과 일생을 기록한 비이다. 원증은 보우 스님이 열반한 뒤 그의 업적과 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시호)이다. 비 옆에 있는 종 모양의 원증국사 탑(석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조성 이후 세워졌다. 정도전이 글을 짓고 선사 의문(誼聞)이 글씨를 써서, 고려 우왕 12년(1386)에 비를 세웠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 비에 보우가 양근 지역(현재 양평)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보우가 국사*로 임명되자 보우의 출생지인 익화현을 양근으로 고치고 군(郡)으로 높였다.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후원자 이름이 적혀 있다.

원증국사 석종 비는 바위에 홈을 파서 몸체(비신)를 놓고 양 옆에 돌기둥을 세워 비를 고정한 후 덮개돌을 얹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비슷한 시기 근처 지역에 세워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간략하다. 한편 덮개돌의 형태로 보아 덮개돌이 받침돌(기단)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비 몸체에 뚫려 있는 구멍은 한국 전쟁 때 총에 맞은 상처라고 한다.

원증국사 보우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禪) 불교**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배워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고려 후기 불교계의 통합을 도모하고 사회 전반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국사(國師): 덕이 높아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주는 최고의 칭호
  • 선불교: 참선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영문

Stele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This stele was erected in 1386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onk Bou (1301-1382, also known as State Preceptor Wonjeung). After a monk's death, a stupa, which contains his remains, and a stele were erected in his honor. To the right of the stele is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Wonjeung (Gyeonggi-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made in 1383.

Bou was ordained as a monk at the age of 13 at Hoeeomsa Temple. In 1346, he went to China and studied the principles of the Linji School of Chan Buddhism which he later actively implemented in Korea. In 1356, Bou was made a Royal Preceptor, and in 1371, he was promoted to State Preceptor, the highest position in the Buddhist clergy.

This stele consists of a body stone inserted into a groove in the natural rock, two pillars supporting the body stone, and a capstone. This design was used at the end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stele resembles that of Monk Boje (Treasure) at Silleuksa Temple in Yeoju but has a simpler design. However, the shape of the stele’s capstone also suggests that it could have been originally used as the stele’s pedestal. It is said that the holes in the stele were caused by bullets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epitaph carved on the front side was composed by Jeong Do-jeon (1342-1398), a renowned civil official at the turn of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1392-1910), and calligraphed by Monk Uimun. The inscription on the back records the name of donors who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is stele.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승려 보우(원증국사, 1301-138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하여 1386년에 세운 탑비이다. 이러한 탑비는 스님의 사후에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함께 조성된다. 탑비 오른쪽에는 1383년에 세워진 종 모양의 승탑(경기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보우는 13세 때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1346년 중국에 가서 선불교의 하나인 임제종을 배웠고,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1356년 왕사로 책봉되었고, 1371년에는 승려 최고 지위인 국사에 책봉되었다.

이 탑비는 자연 암반에 홈을 파서 몸돌을 놓고, 두 개의 돌기둥을 세워 몸돌을 받친 후, 덮개돌을 얹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 말에 사용되었으며, 1379년에 세워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와 유사하면서도 간략한 모습이다. 한편 덮개돌의 형태로 보아 덮개돌이 원래는 받침돌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몸돌에 뚫려 있는 구멍은 한국전쟁 때 총에 맞은 흔적이라고 한다.

전면에 새겨진 비문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정도전이 비문을 짓고 승려 의문이 글씨를 썼다.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