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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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Ginkgo Tree of Juam-ri, Buyeo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영문명칭 Ginkgo Tree of Juam-ri, Buyeo
한자 扶餘 珠岩里 銀杏나무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
지정(등록) 종목 천연기념물 제320호
지정(등록)일 1982년 11월 9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주암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0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주암리 녹간마을에 위치하고 있어 녹간마을 은행나무로도 불린다. 나무의 높이는 23m, 가슴높이둘레는 8.62m이다.

백제 성왕 때 좌평 맹씨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에는 은산 숭각사(崇覺寺) 주지스님이 대들보로 사용하려고 나뭇가지를 베려다 재앙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다. 광복, 한국전쟁 등 나라의 큰일을 앞두고 바람도 한점 없는 날에 갑자기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또 각종 전염병이 유행하였을 때 이 마을만은 무사하여 오래전부터 마을사람들은 영험한 나무로 여겨왔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영문

The ginkgo (Ginkgo biloba L.) is a tree considered to be a living fossil because it has existed for 270 million years. It is generally found in Korea, China, and Japan. As its foliage creates a wide shaded area, the ginkgo is typically planted along the road and at village entrances.

This tree in Juam-ri is said to have been planted by a minister Maeng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when the king of Baekje moved the capital to Sabi (today’s Buyeo area) in 538. However, the actual age of the tree is estimated to be around 1,000 years old.

According to another local legend,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 head monk from a Buddhist temple named Sunggaksa tried to cut this tree to construct a building and brought himself great misfortune. It is also said that the tree’s branches fell right before national occasions such as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n 1945 and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in 1950. Furthermore, even when an infectious disease swept the neighboring areas, the village in which this tree is located was safe due to the miraculous power of this tree.

The locals regard this tree to be sacred and hold a ritual in front of this tree in the first lunar month of each year.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주암리 은행나무는 538년 백제 왕이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 백제의 최고위 대신이던 맹씨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의 실제 나이는 1,000여 년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숭각사라는 사찰의 주지스님이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려고 이 나무를 베려다 재앙을 당했다고 전한다. 광복이나 한국전쟁 등 나라의 큰일을 앞두고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하였고, 전염병이 유행했을 때에는 나무의 영험 때문에 마을이 무사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영험한 나무라고 여겨, 매년 정월에 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