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대종중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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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대종중 묘역
Cemetery of the Bannam Bak Clan
대표명칭 반남박씨 대종중 묘역
영문명칭 Cemetery of the Bannam Bak Clan
한자 潘南朴氏 大宗中 墓域
주소 인천광역시 서구 대곡동 213-9
지정번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9호
지정일 2010년 4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903㎡
웹사이트 반남박씨 대종중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반남 박씨 대종중 묘역은 조선 전기의 무신인 박병문(朴秉文,15세기)과 그 후손들의 묘역이다.

검단 대곡동의 반남 박씨는 15세기 중반 박병문이 두밀 마을에 터를 잡은 뒤 대대로 살아왔다. 후손들 가운데 조선 중기 문신인 박동선과 그의 아들 박정은 신도비가 세워졌다. 두 부자는 조선 숙종 12년(1686)에 각각 정헌(貞憲), 충숙(忠肅)이라는 시호(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호)를 받기도 했다.

현재 각 묘역에는 묘비, 상석(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향로석(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 놓는 돌), 문인석(능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동자석(사내아이의 형상을 새겨서 무덤 앞에 세우는 돌)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우수한 석조 미술품으로 평가되며, 당시 사대부 묘역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영문

Cemetery of the Bannam Bak Clan

This is the cemetery of Bak Byeong-mun, a 15th-century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nine of his descendants. The Bannam Bak Clan has lived in Dumil Village of Daegok-dong ever since Bak Byeong-mun settled and formed a clan village there.

This cemetery is a fine example of a typical upper-class cemetery of the Joseon period. In front of the tomb mounds are tombstones, stone tables, stone incense tables, stone pillars, and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children.

At the eastern side of the cemetery, there are steles dedicated to Bak Dong-seon (1562-1640),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and his son, Bak Jeong (1596-1632). Bak Jeong’s son, Bak Se-dang (1629-1703) grew up to become a renowned scholar and civil official. The epitaphs of these steles were composed by Yun Jeung (1629-1714) and Yi Gyeong-seok (1595-1671), who were the members of the same political faction as Bak Se-dang.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전기의 무신인 박병문(15세기)과 9명의 후손들의 묘역이다. 반남박씨는 15세기 중반 박병문이 대곡동 두밀마을에 터를 잡은 뒤 대대로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다.

묘역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문인석, 동자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묘역 동쪽에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동선(1562-1640)과 그의 아들 박정(1596-1632)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박정의 아들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신인 박세당(1629-1703)이다. 박동선과 박정의 신도비문은 박세당과 같은 정파에서 가깝게 교유하였던 윤증(1629-1714)과 이경석(1595-1671)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