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의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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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의첨재
Uicheomjae Ritual House, Miryang
밀양 의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의첨재
영문명칭 Uicheomjae Ritual House, Miryang
한자 密陽 依瞻齋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오례1길 68-13 (부북면)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지정일 1985년 1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밀양 의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의첨재는 조선 선조(1567~1608 재위) 때 무과에 급제하고 절충장군* 등으로 활약했던 이선지(李先智)가 어머니의 묘를 돌보던 곳에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재실(齋室)이다. 이선지는 광해군(1608∼1623 재위)의 인목대비 폐비 사건 등에 충격을 받고 밀양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지극히 모셨다고 한다.

숙종(1661∼1720 재위) 때에 집터만 전해 오던 곳에 재실을 신축했고, 고종 때인 1897년 현재의 건물로 크게 고쳐 지으면서 의첨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依)’는 의지한다는 뜻이며, ‘첨’(瞻)은 바라본다는 뜻으로, ‘의첨’은 “이곳에 의지하여 어머니의 묘소를 바라본다”를 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주 ‘함평 이씨’ 집안으로 출가한 어머니가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을 안고 친정으로 돌아와 정성으로 키워낸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의첨재는 높은 축대 위에 정면 6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대청 좌우로 왼편에 방 1칸, 오른편에 방 2칸과 부엌 1칸을 뒀다. 솟을대문*이 있는 대문채 좌우에는 행랑방과 부엌이 있다.


  • 절충장군: 조선 시대의 정삼품 무관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솟을대문: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

영문

Uicheomjae Ritual House, Miryang

Uicheomjae is a ritual house used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of the Hampyeong Yi Clan. It was built on the spot where Yi Seon-ji (1576-1624), the first person from the clan to settle in Miryang, built his temporary dwelling to look after his mother’s tomb.

Yi Seon-ji was born in Naju, Jeolla-do Province. He lost his father at a young age and moved to Miryang, his mother’s hometown.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o become a military official in 1603 and began his service, but due to the turbulent political situ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r. 1608-1623), he resigned from his post and returned home where he looked after his mother with the utmost care. After his mother’s death, Yi built a house next to her tomb where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The house eventually disappeared and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r. 1661-1720), a ritual house was built on its site. In 1897, the ritual house was reconstructed and was given its current name, which means “House of Relying Upon and Gazing,” referring to Yi staying here to look after his mother’s tomb.

The complex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 ritual house, and a rear quarters. The ritual house stands on a tall platform and feature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middle and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The room on the right side of the building also has an adjacent kitchen. The gate quarters consists of a gate in the middle with a servants’ room and a kitchen to the left and right, respectively.

영문 해설 내용

의첨재는 함평이씨 문중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이다. 함평이씨의 밀양 입향조인 이선지(1576-1624)가 어머니의 묘를 돌보기 위해 임시 거처를 지었던 자리에 그의 후손들이 재실을 지었다.

이선지는 원래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의 고향인 밀양으로 이주하였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으나,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정치적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밀양으로 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의 묘소 앞에 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이후 집터만 전해오던 곳에, 숙종(재위 1661-1720) 때 재실을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897년에 크게 고쳐 지은 것이고, 이때 ‘이곳에 의지하여 어머니의 묘소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의첨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내에는 대문채, 재실, 뒷채가 있다. 높은 축대 위에 지어진 재실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오른쪽 방 옆에는 부엌이 딸려있다. 대문채에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행랑방과 부엌이 있다.

참고자료

  • 밀양 의첨재, Pleasure from Emptiness,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hanulh/1244 -> 이선지가 어머니 묘소 아래에 의막을 짓고 살전 집이 있었던 곳에 후손들이 숙종 연간에 중창하였다. 1897년에 종손 이만헌이 지금의 모습으로 중수했다.
  • 밀양 의첨재, 경상남도 문화재DB, 경남관광 길잡이 문화재정보, https://www.gyeongnam.go.kr/index.gyeong?menuCd=DOM_000009404005001000&no=938&page_no=106&reurl=DOM_000009404005000000 -> 밀양 의첨재(密陽 依瞻齋)는 1897년에 중건된 함평이씨 문중 재실이다. 이곳은 이선지(李先智, 1576~)가 1611년에 창건한 주택으로 현재의 의첨재는 사랑채에 해당한다. 이선지는 160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 호군(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1850년에 화재로 안채와 가묘가 소실되었고 사랑채와 대문채만이 남았다. 사랑채와 대문채는 노후화되어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으며 1897년 크게 중수하여 의첨재라 편액하여 재실로 사용하였다. 의첨재는 오례마을 뒷산의 남사면 끝자락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정면 6칸, 측면 1.5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대청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장여수장집이며 상부가는 도리가 세 개 있는 3량가이다. 의첨재의 정면에는 솟을삼문이 있고 배면에는 1985년에 복원된 7칸 규모의 안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