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완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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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완재정
Wanjaejeong Pavilion, Miryang
서영훈 기자, 명소로 가꾸는 저수지 (9) 밀양 부북면 위양저수지, 경남신문, 2012.11.23. 기사.
대표명칭 밀양 완재정
영문명칭 Wanjaejeong Pavilion, Miryang
한자 密陽 宛在亭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위양로 273-36 (위양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3호
지정일 2017년 3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40제곱미터
웹사이트 밀양 완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안동 권씨 위양 종중의 입향조(入鄕祖)인 학산(鶴山) 권삼변(權三變, 1577~1645)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00년 세운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온돌방과 대청을 두었는데, 방은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아 다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배로 출입했으나 뒤에 다리를 놓았다.

권삼변은 열 살 무렵 공부를 위해 산청에서 당숙부가 사는 밀양 위양리로 왔다. 열여섯 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0여 년 만인 1604년 돌아와 학산정사(鶴山精舍)를 건립하고 교육에 힘썼다. ‘학산’은 ‘학이 고향에 돌아왔다’는 의미로 취한 호이다.

그는 위양리 남쪽에 있는 위양못 주변을 즐겨 거닐었다. 신라 때 만들어진 위양못은 저수지 가운데에 다섯 개 섬이 조성돼 있는 데다 경관이 빼어났다.

그는 가운데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완재(宛在)라는 이름까지 지어 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완재(宛在)는 중국 《시경(詩經)》에 나오는 표현으로 ‘완연하게 있다’라는 뜻이다. 입향조 할아버지의 꿈은 250여 년 뒤 후손들이 이뤄드렸다.

완재정은 5월이 아름답다. 눈처럼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이 위양못에 잔잔하게 내려앉은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절정을 이룬다.

영문

Wanjaejeong Pavilion, Miryang

This pavilion was built in 1900 by the descendants of Gwon Sam-byeon (1577-1645), the first person of the Andong Gwon clan to settle in Wiyang-ri Village.

Gwon Sam-byeon lived in Sancheong until he was ten years old, at which point he moved to Wiyang-ri, where his father’s cousin lived, to study. Upon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became a prisoner-of-war and was taken to Japan. He returned to Korea in 1604 and settled in this village. Comparing himself to a crane, he gave himself the pen name Haksan, meaning “the crane that returned to its hometown.” He also built Haksanjeongsa Study Hall and devoted himself to teaching students.

Gwon Sam-byeon enjoyed strolling around Wiyangmot Pond (Gyeongsang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167) and said that he wanted to build a pavilion on the island in the middle of the pond. He even gave the imagined pavilion the name Wanjaejeong, meaning a “pavilion that is true to life.” However, he was unable to build the pavilion before his death. In 1900, his descendants built this pavilion to commemorate their ancestor and honor his vision.

At first, the pavilion was accessed by boat, but later a bridge was added. The pavilion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here are many Retusa fringe trees around this pavilion, which create a beautiful scene in May when their white flowers are in full bloom.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안동권씨 가문의 위양리 입향조인 권삼변(1577-1645)의 후손들이 1900년에 세웠다.

권삼변은 원래 산청 지역에 살았는데, 열살 무렵 공부를 위해 당숙부가 사는 위양리로 이주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604년 귀국한 후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학에 비유하며 '학이 고향에 돌아왔다'는 의미로 '학산'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고, 학산정사를 건립하여 교육에 힘썼다.

권삼변은 위양못(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주변을 즐겨 거닐었으며, 위양못 가운데에 있는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했다. '완연하게 있는 정자'라는 뜻의 '완재정'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으나, 생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00년 그의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는 뜻에서 완재정을 세웠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출입해야 했으나, 나중에 완재정이 있는 섬까지 다리를 놓았다. 정자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주변에는 이팝나무가 있는데, 하얀 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면 아름다운 경치가 절정을 이룬다.

참고자료

  • 여행스케치, 데칼코마니 반영과 5월의 눈꽃 이팝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밀양 위양지 http://www.gyeongnam.go.kr/news/board/view.gyeong?boardId=BBS_0000049&menuCd=DOM_000001603001000000&startPage=1&dataSid=41263075 -> 둥글게 쌓아 올린 기와 담장 너머로 가운데 중문이 나있고 잔잔한 위양못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물 위에 살포시 떠있는 완재정은 똑같이 찍어 놓은 듯 데칼코마니 반영은 위양지의 백미 중에 하나로 밀양 8경에 들 만큼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 명소로 가꾸는 저수지 (9) 밀양 부북면 위양저수지, 경남신문, 2012.11.23. (작성자 서영훈)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52414 -> 이미지 출처 / 신라~고려시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무렵에 허물어진 제방을 1634년(인조 12년)에 부사 이유달이 다시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산도 구름도 저수지에 빠져 버렸다 - 밀양 위양못, 부산일보, 2020.5.13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513000012 -> . 완재정이라는 이름은 <시경> ‘진풍’ 편에 나오는 시 ‘겸가’에서 유래했다. 휴대폰으로 시를 찾아 머릿속으로 읊으니 마음이 더욱 편안해진다. (갈대는 무성하고 하얀 이슬 촉촉하네/늘 그리운 당신이 물 건너에 있다기에/거슬러 올라가려니 험한 길 가파르구나/물 따라 흘러가니 모래섬에 당신 얼굴 아른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