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반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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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반계정
Bangyejeong Pavilion, Miryang
밀양 반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반계정
영문명칭 Bangyejeong Pavilion, Miryang
한자 密陽 盤溪亭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아불2길 43-102(범도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지정일 1995년 5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밀양 반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냈던 조선 후기 유학자 이숙(李潚ㆍ1720~1807)이 1775년에 단장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넓은 바위 위에 지은 정자이다. 돌을 깎아내지 않고 자연석 위에 그대로 집을 짓고, 담장은 냇물을 보는 데 지장 없도록 낮게 조성한 점이 특징이다.

평평한 돌 위로 강물이 흘러가는 풍광에 반해 자신의 호를 ‘반계(盤溪)’라고 짓고 정자 이름으로도 삼았다. 손사익, 신국빈, 안인일, 남경희 등 명사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읊거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 정자에는 기암(奇巖), 낙조, 봄꽃 등 이 일대 풍광을 노래한 ‘반계 십이경(盤溪十二景)’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담장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한여름 한껏 핀 배롱나무꽃 등을 즐기는 산림처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저술을 남기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보수했으며 현재 건물은 고종 때 후손 이소구(李韶九)가 대대적으로 해체ㆍ복원한 것이다. 옆에 있는 반계정사(盤溪精舍)는 이숙이 독서하던 별당으로 1980년 복원했다.

영문

Bangyejeong Pavilion, Miryang

Bangyejeong Pavilion, located atop a flat outcrop on the bank of Danjangcheon Stream, was established in 1775 by the Confucian scholar Yi Suk (1720-1807). Since its establishment, the pavilion has undergone several renovations, including a large-scale renovation at the turn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by Yi Suk’s descendant Yi So-gu.

Yi Suk lived a secluded life, having never sought an official career. He interacted with great scholars of the time and enjoyed reciting poetry and sharing stories about the world. Yi was so captivated by this site’s picturesque scenery that he chose it as his scholarly residence and took the pen name Bangye, meaning “Plate[-shaped Outcrop] and Stream,” in reference to its geological features. In order to not damage or obstruct the beautiful scenery, the pavilion was built to accommodate the natural rock on which it stands, and the enclosure wall surrounding the pavilion was made shorter than usual.

Next to Bangyejeong Pavilion is Bangyejeongsa Study Hall, which originally served as Yi Suk’s detached reading quarters. The current building was reconstructed in 1980.

영문 해설 내용

단장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넓은 바위 위에 위치한 반계정은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숙(1720-1807)이 1775년에 지은 정자이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보수했으며 현재 건물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후손 이소구가 대대적으로 해체, 복원한 것이다.

이숙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으며,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시를 읊거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 이숙은 반계정 주위의 평평한 돌 위로 강물이 흘러가는 풍광에 반해, 자신의 호를 “너럭바위와 시내”라는 뜻의 반계라 지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거나 가리지 않기 위해, 자연석 위에 그대로 집을 짓고, 장은 냇물을 보는 데 지장 없도록 낮게 조성하였다.

반계정 옆에 있는 반계정사는 이숙이 독서하던 별당으로 1980년에 다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