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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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극락전
Geungnakjeon Hall of Bongamsa Temple, Mungyeong
문경 봉암사 극락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문경 봉암사 극락전
영문명칭 Geungnakjeon Hall of Bongamsa Temple, Mungyeong
한자 聞慶 鳳巖寺 極樂殿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산1-1번지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1574호
지정(등록)일 2008년 9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문경 봉암사 극락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9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지증국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태조 18년(935)에 정진대사가 고쳐 지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극락전과 일주문만 남기고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고 한다.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봉암사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꼭대기 부분이 목탑의 요소를 잘 갖춘 목탑식 건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이며, 중층 겹처마* 모임지붕**이다.

이 건물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할 때 원당願堂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8년에 보물로 승격되었다.


  • 겹처마 : 처마 끝의 서까래 위에 짧은 서까래를 잇대어 달아낸 처마
  • 모임지붕 : 추녀마루로만 구성되고 용마루 없이 하나의 꼭지점에서 지붕골이 만나는 지붕형태

2021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지증 대사가 처음 지었다. 신라와 후백제의 전쟁 때 신라 경순왕이 이곳에 피난을 와서 원당*으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태조 18년(935)에 정진 대사가 고쳐 지었다. 현재의 봉암사는 임진왜란 때 거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버렸다가 이후 복원한 모습인데, 이곳 극락전과 일주문만은 소실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처마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목탑형 양식의 전각이다. 현재 봉암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기단**과 초석은 고려조의 양식이고, 하층 처마는 높은 단층 몸체에 처마를 둘러 중층 건물 외관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특히 건물의 맨 꼭대기 부분은 목탑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원당(原糖): 궁사(宮司) 또는 민가에 베풀어 왕실의 명복을 빌던 곳.
  • 기단(基檀):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
  • 어필각(御筆閣): 임금이 손수 쓴 글씨를 보관하던 전각.

영문

  • Geungnakjeon Hall of Bongamsa Temple, Mungyeong

2019

Geungnakjeon is a Buddhist worship hall enshrining a statue of Amitabha, the Buddha of Western Paradise. It is believed that all beings who call the name of Amitabha while reflecting on his meritorious virtues can be reborn in the Buddhist paradise of the West.

This hall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middl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the oldest building in Bongamsa Temple, and its original design is well-preserved. Its has a two-tiered roof and its decorative top is made of granite.

Bongamsa Temple was founded in 879 by State Preceptor Jijeung (824-882) and reconstructed in 935 by Monk Jeongjin (878-956). The temple is where the Huiyangsan School, one of the “nine mountain schools” representing Korean Seon Buddhism, was established.

2021

Geungnakjeon is a Buddhist worship hall for the veneration of Amitabha, the Buddha of Western Paradise. It is believed that all beings who call the name of Amitabha while reflecting on his meritorious virtues can be reborn in the Buddhist paradise of the West.

Bongamsa Temple was founded in 879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by the monk Jijeung (824-882). It is said that King Gyeongsun (r. 927-935) took refuge at this temple and prayed here for the safety of the royal family during the conflicts during the kingdom’s decline.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monk Jeongjin (878-956) oversaw the renovation of the temple in 935. The temple underwent several more renovations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but was destroyed in a fire in 1907. Geungnakjeon Hall survived the fire, and the temple was reconstructed beginning in 1915.

Geungnakjeon Hall is well-preserved in its original form. It resembles a wooden pagoda with its square layout, two-tier roof, and granite decorative top. Inside the hall is a plaque with the inscription of “Royal Calligraphy Pavilion,” which suggests that at some point in time, the calligraphy of a king was kept in this hall.

영문 해설 내용

2019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이다.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봉암사 극락전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봉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중층의 모임지붕 꼭대기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장식을 두었다.

봉암사는 신라시대인 879년에 지증국사(824-882)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인 935년에 정진대사(878-956)가 고쳐지었다. 한국 선종의 구산 중 희양산파가 세워진 곳이다.

2021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이다.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봉암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79년에 지증대사(824-882)가 창건하였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이 전쟁을 피해 이곳에 와서 왕실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인 935년에 정진대사(878-956)가 고쳐 지었고, 이후 여러차례 고쳐 지어졌으나, 1907년 큰 화재로 거의 모든 불전이 소실되었다. 극락전은 소실되지 않았으며, 지금의 봉암사는 1915년부터 계속해서 복원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극락전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사각형의 건물 위로 중층 지붕과 화강암으로 만든 장식을 둔 형태이며, 이는 목탑의 모습을 모방한 것이다. 내부에 어필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 이곳에 임금의 글씨를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