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제 효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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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제 효자각
Commemorative Pavilion of Ryu Gyeong-je for His Filial Devotion
대표명칭 류경제 효자각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Ryu Gyeong-je for His Filial Devotion
한자 柳京堤 孝子閣
지정번호 무주군 향토문화유산 제6호



해설문

국문

류경제 효자각은 류경제의 효심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24년(1887)에 나라에서 세운 누각이다. 류경제의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화중(和中)으로 충경공 류량(忠景公 柳亮)의 후손이다.

류경제는 열세 살 때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집으로 입양되었다. 그는 친가와 양가의 두 부모를 한결같이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러하던 중 양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게 되자 그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않고 간호를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병이 낫지 않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안으로 흘려 넣어 양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그는 친아버지가 병들었을 때에도 양아버지 때와 같이 오른쪽 손가락을 잘라 입안으로 피를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또한 친가의 형제들과도 우애가 돈독하여 가정이 화목하였다.

이러한 류경제의 행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에 고종 24년(1887) 그 효심을 기리기 위하여 효자각을 세워 그를 표창하고, 동몽교관*으로 증직*하였다.


  • 동몽교관: 조선시대 어린이를 교육하기 위하여 각 군현에 둔 벼슬
  • 증직: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주는 일


  • 정려 현판에 ‘효자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유경제지려 숭정 기원후 오 무자(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柳景堤之閭崇禎紀元後五戊子)’라고 쓰여 있는데, '숭정 기원후 오 무자'는 1888년임.
  • 정려각은 1892년에 세웠다고 함.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Ryu Gyeong-je for His Filial Devotion

This pavilion was built in 1892 to house a plaque bestowed in 1888 in commemoration of the filial piety of Ryu Gyeong-je (1802-1856).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When Ryu Gyeong-je was 13 years old, he was adopted by his father’s cousin who did not have a male heir. Throughout his life, Ryu devotedly took care of both his birth and adoptive parents. When his adoptive father became ill, Ryu did not even eat and nursed him with the utmost attention. He made an incision on a finger on his left hand and fed his blood to his adoptive father until he recovered. When his birth father fell ill, Ryu cured him as well by feeding him blood from a finger on his right hand. Ruy was also known to be a loving brother to his siblings. His virtuous acts were later honored with this commemorative plaque.

영문 해설 내용

이 정려각은 류경제(1802-185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88년에 내려진 정려를 모신 것으로, 1892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류경제는 13세 때, 후사가 없던 아버지의 사촌형제의 양자가 되었다. 류경제는 친가와 양가의 두 부모를 한결같이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양아버지가 병에 걸리게 되자 밥도 먹지 않고 정성껏 간호하였고, 자신의 왼쪽 손가락을 잘라 양아버지의 입안으로 피를 흘려 넣어 양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친아버지가 병들었을 때에도 양아버지 때와 같이 자신의 오른쪽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입안으로 피를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또한 친가의 형제들과도 우애가 돈독하여 가정이 화목하였다. 이러한 류경제의 행동이 널리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