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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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Stupa of Buddhist Monk Jangyu, Gimhae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영문명칭 Stupa of Buddhist Monk Jangyu, Gimhae
한자 金海 長游和尙 舍利塔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 (대청동, 장유암)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장유화상 사리탑(長遊和尙 舍利塔)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처남이자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승려 장유화상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물로, 김해시 대청동 장유암에 위치한다.

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사리탑은 방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과 연꽃 모양 기단을 놓고 그 위에 탑신을 얹었다. 하대석인 팔각 기단의 면에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중대석인 팔각면석은 문양은 없으나 우주(모서리 기둥)를 양각하여 입체감이 있다. 상륜부와 탑신부는 부분적으로 결실 및 복원되어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으나, 기단부는 연꽃 조각선이 뚜렷하고 우주가 조각된 중대석과 어우러져 비교적 조형미가 있다.

여러 번의 전란과 재난으로 암자와 관련 유물들은 거의 소실되고 사리탑도 훼손되었는데, 지금의 사리탑은 제작 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 조선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영문

Stupa of Buddhist Monk Jangyu, Gimhae

A stupa is a structure built to enshrine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The stupa of Buddhist monk Jangyu is said to have first been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Jilji (r. 451-492) of Geumgwan Gaya (42-532). However, the current stupa is presumed to date to the tur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This site is said to have been occupied by Jangyuam, a hermitage established to commemorate Jangyu, but only this stupa remains.

Jangyu is said to have been a prince of the faraway Ayuta kingdom who traveled by boat to the Korean Peninsula in 48 together with his younger sister Heo Hwang-ok (33-188). Heo Hwang-ok later married King Suro (r. 42-199), the legendary founder of Geumgwan Gaya, and gave birth to 10 sons. Later, Jangyu is said to have visited sacred mountains in search of Buddhahood together with seven of his nephews.

The stupa consists of a square foundation and an octagonal pedestal, body stone, roof stone, and decorative top. Parts of the decorative top and body stone broke off and were later repaired. Overall, although the stupa is not ornate, it has an aesthetic beauty, and its line carvings are distinct.

영문 해설 내용

사리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탑이다.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금관가야 질지왕(재위 451-492) 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지금의 사리탑은 고려 말 조선 초에 다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에는 장유화상을 기리는 장유암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이 사리탑만 남아 있다.

장유화상은 아유타국의 왕자였는데, 48년 동생 허황옥(33-188)과 함께 배를 타고 한반도에 왔다. 허황옥은 금관가야의 제1대 왕인 수로왕(재위 42-199)의 왕비가 되었고, 10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후 장유화상은 수로왕의 아들 7명과 함께 명산을 다니며 불도를 구했다고 한다.

이 사리탑은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하대석, 기단, 몸돌, 지붕돌, 머리장식을 올렸으며,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장식과 몸돌 부분이 일부 결실되고 후대에 보수되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으나, 조형미가 있고 조각선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