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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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향교
Gi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김해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향교
영문명칭 Gi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한자 金海鄕校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향교길 21 (대성동, 김해향교)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
지정일 1983년 8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수량/면적 8동
웹사이트 김해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향교는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한 곳이다. 김해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려 시대 목은 이색의 아버지였던 가정 이곡이 지은 「김해향교수헌기」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어, 고려 후기에 이미 김해향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전기까지 유교 교육을 전담하던 김해향교는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 이후 김해부 북쪽에 다시 세웠다가 조선 숙종 14년(1688)에 김해부 동쪽으로 옮겼다. 영조 46년(1770)에는 지금의 자리인 김해부 북쪽에 다시 지었다.

향교의 입구에는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있으며 그 뒤에 풍화루가 있는데, 유교 교육을 통해 지방 주민들을 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풍화루를 지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륜당이 있고,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이 그 뒤에 자리하여 향교 건축의 일반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현재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졌고, 봄, 가을에 석전*을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올린다.

김해향교는 고려 및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유학 교육 기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 석전: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

영문

Gi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A local Confucian school, called hyanggyo in Korean, was a public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It was established nationwide to function as a local shrine for Confucius and other sages and to promote Confucian education and nurture elites in local districts. Students learned about literature including poet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Gi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late Goryeo period, but the exact year is unknown. The local Confucian school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was later rebuilt. In 1688, the school was relocated to the eastern part of Gimhae, but it burnt down in 1769. It was rebuilt next year at its current site in the northern part of Gimhae. It has since undergone several renovations.

The complex, from front to back, includes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 lecture hall called Myeongnyundang, an inner gate, two auxiliary shrines, and a main shrine called Daeseongjeon. Veneration rituals are held each spring and autumn, and incense burning rituals are held on the 1st and 15th days of each lunar month.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김해향교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고려 후기부터는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지어졌던 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다시 세웠다가 1688년 김해부 동쪽로 옮겨 지어졌다. 1769년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에 지금의 자리인 김해부 북쪽에 다시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김해향교는 앞쪽에서부터 정문,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동무와 서무, 사당인 대성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올린다.

참고자료

  • 김해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802170000 ->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 정문인 풍화루는 누형식의 건물이 아닌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된 1층 건물로 지어져 특이하다. / 김해지방 향토사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향교이다.
  • 김해향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013 -> 1408년(태종 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 부사 정기남(鄭奇男)이 김해읍 동쪽 다전동에 중건하였다. 1683년(숙종 9) 향교 뒷산이 사태로 무너지자, 1688년에 김후수(金後修)와 부사 이행익(李行益)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대성전과 동무·서무를 건립하였고, 이듬해에 동재·서재를 건립하였다. 1693년 부사 이하정(李夏禎)이 명륜당과 남루(南樓)를 중건하였으며, 1769년(영조 45) 화재로 소실되자 이듬해 재건하였다. 1880년(고종 17)에는 김익성(金益成)이 중수하였고, 1887년에는 교궁을 보수, 단청하였으며, 내삼문(內三門)도 수리하였다. 1904년에는 군수 이근홍(李根洪)이 중수하였고, 1972년 대성전·명륜당·삼문(三門)을, 1975년 서무(西廡)를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6칸, 명륜당 8칸, 서무·내삼문·동재·서재·남루 등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 김해 향교(金海鄕校)-경남 김해, 청암스토리 (작명/풍수지리),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s1481/222425263377 -> 건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