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규, 김기종 효자정려비 및 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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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규, 김기종 효자정려비 및 정판
Steles and Commemorative Plaque of Kim Bok-gyu and Kim Gi-j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김복규, 김기종 효자정려비 및 정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복규, 김기종 효자정려비 및 정판
영문명칭 Steles and Commemorative Plaque of Kim Bok-gyu and Kim Gi-j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한자 金福奎, 金箕鍾 孝子旌閭碑 및 旌板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561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144호
지정일 1993년 8월 3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김복규, 김기종 효자정려비 및 정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양세정효각(兩世旌孝閣)은 김복규(1742∼1819)와 아들 김기종(1783∼185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철종 6년(1855)에 세운 것이다. 당초 전주시 삼천동 상거마을에 있었던 것을 1981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정효각 안에는 효자 김복규 정려비와 효자 김기종 정려비 2기가 놓여 있고 안팎으로 효덕연경당(孝德衍慶堂), 양세정효각(兩世旌孝閣)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의 글씨는 모두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작품이다.

김복규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운명하려 하자 수차례 목숨을 회생시켰으며, 그의 아들 김기종 또한 효심이 깊어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며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한다. 그의 애통한 울음소리가 호랑이 울음처럼 산수에 메아리쳐 이후로 마을 이름을 ‘호동’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효심이 깊었던 김기종은 유학자로서의 업적도 남겼다. 『진묵대사유적고』(1852)의 서문을 쓰는 한편 진묵대사의 행적을 수집하고 간행하는 데도 힘썼다.

  • 밖에 걸린 현판은 ‘효덕연경지각(孝德衍慶之閣)’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영문

Steles and Commemorative Plaque of Kim Bok-gyu and Kim Gi-j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These two steles and one commemorative plaque are for the filial piety of Kim Bok-gyu (1742-1819) and his son Kim Gi-jong (1783-1850). The stele on the left is of Kim Bok-gyu and the stele on the right is of Kim Gi-jong. The commemorative plaque was bestowed in honor of both of their filial piety.

When Kim Bok-gyu’s father was seriously ill and in danger of dying, Kim Bok-gyu had a dream of a deity and saved his father’s life by getting medicine as the deity told him in the dream. Kim Gi-jong was also known for his filial devotion. After his parents died, he built a hut next to the tomb and completed the required mourning period. It is said that his crying was like that of a tiger, and since then the village was called Hodong, meaning “tiger’s village.”

The steles and commemorative plaque were originally erected in today’s Jeonju area, and a pavilion was built to house them in 1885. In 1981, the steles, plaque, and pavilion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the complex of Hyochungseowon Confucian Academy.

The steles are calligraphed by Kim Jeong-hui (1789-1856), a renowned calligrapher of the lat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김복규(1742-1819)와 그의 아들 김기종(1783-185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비와 정판이다. 왼쪽은 김복규의 비이고 오른쪽은 김기종의 비이다. 정판은 두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것이다.

김복규는 16세 때 부친이 병으로 운명하려 하자, 꿈에 나타난 신이 일러준 대로 약을 구해 아버지의 목숨을 회생시켰다. 김기종 또한 효심이 깊어, 부모상을 당한 후 3년간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며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의 울음소리가 마치 호랑이 울음소리 같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호동’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정려비와 정판은 원래 전주에 세워졌고 1885년에 보호각이 세워졌다가, 1981년 현재의 위치인 효충서원 경내로 옮겨졌다.

정려비의 글씨는 모두 조선 후기의 저명한 서화가인 김정희(1786-1856)가 쓴 것이다.

참고